▲ 임규홍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인문대학장

1888년 11월 고흐는 자기가 세상을 떠나기 두 해 전 35세에 그의 친구 고갱을 사무치게 기다리고 있었다. 고흐는 친구 고갱과 다투고 떠나버린 고갱을 기다리면서 그가 앉을 화려한 의자를 그린다. 여름같이 한낮은 약간 더운 오월 오후다. 나는 나른한 몸을 추켜세우고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고흐 레플리카전을 보러 갔다. 남강 바람이 시원하고 툭 트인 넓은 광장에 마음도 한결 트인 듯했다.

전시를 둘러보면서 고흐의 ‘빈센트 의자’를 보는 순간 나는 이전 어느 날 법정 스님이 계셨던 불일암에서 보았던 작은 나무 의자가 갑자기 떠올랐다. 왜 그럴까? 나도 놀랐다. 법정 스님의 의자가 내 깊은 무의식 속에 잠자고 있었던 것일까. 고흐는 많은 의자를 그렸지만 그 가운데 인상 깊은 두 개의 의자 그림을 그린다. 하나는 고갱을 위한 ‘고갱의 의자’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빈센트의 의자’이다.

‘고갱의 의자’는 고흐가 그토록 애절하게 고갱을 기다렸고 짝사랑했던 고흐의 마음을 고스란히 나타내고 있다. 양탄자 위에 팔걸이가 있고 의자 위에는 기다림의 촛불과 작은 책이 놓여 있다. 화려한 유혹과 존경의 기다림을 상징하는 것 같다. 다른 하나는 고갱이 끝내 돌아오지 않자 간절한 그리움을 나타낸 무욕의 ‘빈센트 의자’다. 너무나 단출한 나무 의자에 의자 모서리에는 파이프 담뱃대와 풀어진 담배가 놓여 있다.

‘빈센트의 의자’는 오로지 자신의 외로운 마음과 모든 것을 다 내어 놓은 무욕의 마음을 담아 놓은 듯했다. 고갱의 의자는 ‘기다림’의 의자이고, 빈센트의 의자는 ‘비움’의 의자이다.

법정 스님은 송광사 가는 외진 대숲 길을 지나 자리한 작은 암자인 불일암에서 수행을 하셨다. 그 작은 암자 앞에 투박한 나무로 만든 의자가 늘 놓여 있었다. 껍질도 벗기지 않은 채 얽은 작은 의자다.

스님은 고희의 나이에 거기에 앉아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누구를 기다렸을까.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무념무상의 삼매에 들었을까. 법정 스님의 의자는 빈센트의 의자와 같이 ‘비움’의 의자다. 고흐가 가난하여 가진 것은 없었지만 그림을 그림으로써 마음을 다스렸고, 그림으로 세속의 고통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림으로 수행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많은 그림을 남겼다.

법정 스님은 당신의 삶을 글로써 녹아내었다. 맑고 밝은 수행자의 눈으로 본 자연을 무명하고 어리석은 중생들의 가슴을 울리는 쉬운 중생의 글들을 남겼다. 무욕의 삶, 무소유의 삶을 철저하게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누구의 발길도 없는 오직 산새와 바람만 오고가는 깊고 깊은 강원도 산속의 삶이나, 초라하리만치 작은 불일암에서 텃밭을 일구었던 삶이나, 화려한 관이 아닌 한 겹 천으로 육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모든 것을 놓고 떠난 삶이 모두 법정 스님의 삶이었다.

가진 것 없이 평생 오직 그림으로 삼매에 들었던 고흐나, 가진 것 없이 오직 베풀면서 글로써 수행하고 삼매에 들었던 법정! 그것까지도 남기지 말라고 했던 법정! 그래서 모두 고흐를 그리워하고, 법정을 그리워한다. 고흐의 빈 의자에서, 법정의 나무 의자에서 나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떠나보냄일까, 비움일까, 기다림일까. 임규홍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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