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반대 방식으로 ‘책읽는 도시’ 선도
호기심과 충만감을 채워주는 도서관
책 대여를 넘어 미래를 설계하는 공간

▲ 정명숙 설위원실장

기대 이상이었다. 외관은 물론 실내까지도 근사하고 편안하다. 주변 자연 환경과 도시의 역사성을 충분히 담아낸다. 입구에 들어서는 즉시 실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나즈막한 책장에 책들이 꽉 채워져 있으나 부담감 보다는 충만감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지난 주 방문했던 일본의 몇곳 도서관에서 느낀 공통점이다.

‘도서관 관광’이라는 신화를 낳고 있는 일본 사가(佐賀)현 다케오시(武雄市)도서관. 널리 알려진대로 입구에 들어서자 커피와 빵을 파는 스타벅스, 신간을 파는 서점, 책을 빌려주는 도서관이 차례로 펼쳐졌다. 다케오시는 인구 5만의 작은 도시다. 그런데 2013년 재개관한 도서관의 연간 방문객이 100만명 가까이 된다.

다케오도서관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다만 이용자가 주민의 20%에 불과했다. 다케오의 기적은 이런 도서관에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한 30대의 히와타시 시장이 일본 최대 서점인 츠타야를 경영하는 CCC(Culture Convinience Club)에 위탁운영을 맡기면서 시작됐다. <지적자본론>의 저자이기도 한 CCC의 최고경영자 마스타 무네아키는 리모델링을 통해 도서관­서점­카페를 한 공간에 넣었다. 이 뿐이라면 우리나라 서울 한복판 코엑스의 별마당도서관처럼 누구든 따라하기가 어렵지 않다. 주목할 대목은 “AI가 인간의 지능을 대신하게 된다면 그 지능을 넘어선 지성과 통찰, 창의력만이 개인의 가치가 될 것”이고 그것은 ‘책으로부터 가능하다’는 마스타 무네아키의 철학이다.

다케오시도서관은 연중무휴다. 개관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12시간. 책분류법도 우리가 아는 십진분류법이 아니다. 저자가 대상으로 삼는 독자를 찾아 분류하는 22종분류법을 사용한다. 취향 큐레이선이다. 책과 무관한 마르세(시장), 요리강좌, 루미나리에 등 이벤트도 끊임없이 계속된다.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는 운영방식에서 비롯된 ‘특별하고 독창적이고 유일무이한 운영방식’은 나열하기도 벅차다. 미조카미 마사가추 관장은 “어떻게든 사람들이 도서관에 발을 들여놓게 하고자 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후쿠이(福井)현립도서관은 다케오시도서관과 정반대다. 다케오도서관이 시내 한가운데 대형마트 옆에 자리하고 있다면 후쿠이도서관은 노선버스도 드문 논으로 둘러싸인 뜬금없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벤트도 거의 없다. 책을 빌리고 읽는 정통 도서관의 역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건물의 콘셉트도 ‘지식의 바다’다. 관장도 부관장도 모두 공무원이다. 그럼에도 일본에서 이용률이 가장 높은 도서관으로 꼽힌다. 카페형 도서관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흔들림이 없었고 변화를 모색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색다른 시도가 없음에도 도서관 이용률이 높은 이유에 대해 仲橋 부관장은 “주민들이 교육이나 문화에 돈을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도서관 사랑도 각별하다”면서 “일반적 도서관과 다른 독자적인 정책은 없다”고 답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흔한 스마트폰으로 검색이 가능한 앱이 있다는 것을 자랑삼았다. 오히려 다른 도서관과 책대여를 교류하는 상호대차는 당연한 것인양 했다. 기록보존용 문서관과 지역 출신작가들을 소개하는 문학관이 있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아이들에게 글을 읽어주는 방법이나 책 외의 다양한 문의(reference)에 대한 상담이 이색 프로그램으로 꼽힐 정도다. 셔틀버스가 20분 간격으로 운영되고 지상 주차장이 400면이나 된다는 것은 부러운 점이다. 도서관의 전통적 지향점을 꾸준히 이어가는, 그야말로 클래식한 도서관이다.

끊임없이 변화했지만 요란하지 않았던 다케오시도서관. 변함이 없었지만 지루하지 않았던 후쿠이현립도서관. 얼핏 극과 극을 달리는 두 도서관의 운영철학, 그러나 공통점은 있다. 책을 통해 삶을 기획하고 설계함으로써 스스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도록 지역주민의 요구를 충실히 파악하고 철저하게 반영한다는 것이다. ‘책 읽는 울산’을 위한 우리의 도서관이 가야할 길이 어렴풋이 보인다. 정명숙 설위원실장 ulsan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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