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서영 동평초등학교 교사

­상처의 말­

몇 년 전, 봄이 시작되었지만 독감은 여전히 아이들을 괴롭혔다. 독감이 더 이상 퍼지지 않도록 아이들 위생에 신경을 썼는데 한 번은 손톱깎이를 숙제로 내주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하루 이틀에 손발톱을 정리하였다. 하지만 지영이(가명)는 여전히 긴 손톱을 하고 학교에 왔다. 조손가정으로 할머니와 지내지만 손톱하고는 무관하다는 생각으로 다른 아이들도 들으란 듯이 엄하게 소리쳤다. “내일까지 깎고 오지 않으면 정말 혼날 줄 알아!” 다음날 지영이의 손톱은 억지로 물어뜯은 손톱 반, 들쭉날쭉한 손톱, 너무 짧게 깎아 피가 날듯 한 손톱으로 쭈뼛쭈뼛 손을 내밀었다.

알아보니 사정이 있었다. 할머니는 지난겨울 백내장 수술을 하실 정도로 시력이 좋지 않고, 손발톱을 가끔 이웃의 이모가 깎아주시곤 했다는 것이다. 매번 부탁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담임은 독촉을 하니 혼자서 이빨로도 해보고 어리숙한 실력으로 손톱을 깎아 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3월 상담에 지영이 할머니가 색안경을 끼고 오신 것이 스치고 지나갔다.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길로 보건실에서 손톱깎이를 빌려와 울면서 지영이의 손발톱을 깎아주었다. 그때 내가 한 말은 지영이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을까?

­신념의 말­

신규의 티를 막 벗으려는 6년 차 즈음의 이야기다. 학교 친목여행을 다녀오고 회식자리에서 취기가 오른 나는 당시 교장선생님에게 평소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학교 교육방침에 대해 따지듯 물었다. 한참 듣고 계시던 교장선생님은 “그 모든 것들도 교육의 큰 물결 속에 함께 흘러간다네. 자네의 그 말도 신념이 있다면 또 다른 물줄기가 될 수 있겠지. 노력하시게나.”라는 말을 하시고는 자리를 옮기셨다.

아직 어려 이해하지 못했지만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던 기억이 있다. 강남교육장, 고래박물관 관장까지 역임하셨던 교장선생님은 벌써 퇴직하셨지만 아직도 그 말씀은 이제는 신념이 되어 나의 교육 물결 속에서 이어져 흐르고 있다.

­감동의 말­

올해 지도하고 있는 세형이(가명) 어머님과 문자를 주고받은 일이 있었다. 문득 세형이 어머님은 “저희 큰아이 담임하셨을 때 보내주신 문자 감동받아 간직하고 있습니다.”라며 문자를 보내셨다. 문자의 내용은 “1년간 귀한 자녀 맡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문자로 인사드림에 용서하세요.”였다. 당시 담임한 학반을 진급을 시키고 시원섭섭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에 학부모에게 보낸 간단한 문자 한 통이었다.

교사란 직업이 말을 많이 하니 잘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시간이 갈수록 말하는 것이 참 어렵고 무겁다. 고민하던 차에 우리 교육청에서 회복적 생활교육의 확산을 위한 일환으로 선생님들에게 ‘비폭력 대화’에 관한 연수를 무료로 지원하고 있어 지난주부터 듣고 있다. 어렵지만 말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에 대해 조금씩 배우고 있다. 학급에도 조금씩 써보는데 아이들의 반응이 좋다. 올 5월, 가정의 달을 지나오며 얼마나 내 말의 무게를 느끼며 지냈는지 새삼 반성하고 있다. 반성이란 것이 지나야 할 수 있는 것이어서 안타깝지만 그래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김서영 동평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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