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철호 울산시장과 황세영 울산시의장이 삭발을 단행했다. 29일 롯데백화점 광장에서 열린 시민총궐기대회에서다. 조선업 위기의 새로운 돌파구로 부유식해상풍력 등을 추진하던 송시장으로서는 한국조선해양의 본사를 서울에 둔다는 현대중공업의 결정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협력업체의 불안이나 일자리 감소 우려는 말할 것도 없고 조선해양 관련 투자 등에 대한 결정권을 지역의 관점이 아닌 서울에서 행사하게 될 경우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삭발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최근 정치인들의 ‘삭발 정치’가 눈에 띈다. 여론을 집중시켜 정부를 압박하는 수단인만큼 사실상 야당 정치인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다. 지난 2일 자유한국당 의원 5명이 신속처리안건 지정에 항의하며 삭발했고, 지난달 포항시장은 특별법 제정 촉구 범시민결의대회장에서 갑작스럽게 삭발을 했다. 여당 정치인의 삭발은 2004년 설훈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통과한데 대한 울분을 삭발과 단식으로 표현한 정도가 꼽힌다. 삭발이 투쟁의 마지막 수단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기는 하지만 모두 공감을 얻는 것은 아니다.

송시장도 삭발을 결정하기까지 적잖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송시장은 70을 넘긴 나이에다 여당 정치인이다. 젊은 혈기나 정치적 야심으로 삭발을 할 나이는 분명 아니다. 민간기업의 기업활동에 반대해 현직 시장이 삭발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사례도 찾기 어렵다. 게다가 현대중공업과 대우해양조선의 기업결합은 산업은행이 깊이 관련돼 있는 사실상 정부의 결정이나 다름없다. 자치단체장이자 여당 정치인인 시장이 삭발까지 해가며 반대의사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나 민주노총의 물적분할 반대를 위한 투쟁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어 마치 ‘한국조선해양의 서울 본사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민주노총의 물적분할 반대’에 동의하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도 곤혹스러운 대목이다.

그럼에도 취임 후 시민들의 낮은 지지도로 인해 적잖은 고민을 해온 송시장으로선 다양한 계층의 전폭적 지지가 이어지는 현대중공업 문제에 앞장서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머리를 깎은 송시장과 황의장은 “울산 땅에서 시민의 피와 땀, 목숨과 함께 성장해온 현대중공업 본사는 반드시 존치돼야 한다”며 손을 맞잡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에 반해 현대중공업은 “효율적 경영관리를 위해 한국해양조선의 본사는 서울이어야 한다”며 주총 강행의지를 재확인했다. 주총은 31일 동구 한마음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틀 앞둔 29일 송시장의 절박한 선택, ‘삭발 정치’가 정부와 현대중공업을 움직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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