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太和江百里
14. 집청정(상)

▲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 건너편에 있는 경주 최씨 가문의 정자, 집청정은 최진립 장군의 증손인 운암 최신기가 지었다. 집청정은 ‘앞으로 흐르는 아홉 굽이의 맑은 기운을 끌어 모은다’는 의미로 이름이 지어졌다. 집청정 대청에 서면 반구대 기암절벽이 한 눈에 보이고 그 아래로는 대곡천 맑은 물 소리가 들린다.

경주 최씨 가문의 정자로
최진립 장군의 증손자인
운암 최신기가 1713년 건립
1743년에 불타 이듬해 재건
현재 건물은 1932년 지어져

반구정으로 불리기도 하고
청류헌·대치루 편액 통해
집청정의 성격·의미 유추

조선후기 관리·문인 운집
정자 주인과 詩 주고받아
최신기 9세손인 최준식이
필사로 ‘집청정시집’ 묶어
1600년대~1800년대 지어진
406수 한시 총망라돼 있어

반구대(盤龜臺)와 집청정(集淸亭)은 한 짝이다. 집청정 대청에서 보면 반구대 북쪽 사면이 한 눈에 보이고 그 절벽 아래로는 대곡천 물살이 굵은 돌들 사이로 지나간다. 집청정 정자에서 보는 반구대가 신선들이 사는 거처라면, 반구대에서 내려다 보는 집청정은 도가 높은 유학자들의 거처라고 할만 하다.

▲ 집청정(集淸亭) 현판.

대곡천변에는 불교가 융성했을 때 곳곳에 사찰이 세워졌으나 세월이 지나 유교가 밀려 들어오면서 정자로 점차 바뀌었다. 대곡천변의 집청정은 유교의 대표적인 거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유명세가 대단했다.

◇유불선이 한자리에 모인 대곡천변

반구대 남쪽 언덕배기는 그 전만 해도 신라 최고의 고승이었던 원효대사가 주석해 있었던 반고사(磻高寺) 자리였다. 그러나 그 반고사는 조선으로 넘어가면서 반구서원으로 바뀌었고, 그 인근에는 유교 인문학의 산실이었던 집청정이 들어섰다. 이렇듯 반구대는 시대에 따라 양상이 달랐을 뿐 뿌리깊은 동양정신의 근원은 똑같았다. 대곡천을 따라 흘러내리는 유불선(儒佛仙)의 흐름은 지금도 유유히 그 맥락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 대치루(對峙樓) 현판.

집청정은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 건너편에 있는 경주 최씨 가문의 정자이다. 300여년의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집청정은 운암 최신기(1673~1737)가 1713년(숙종 39)에 지었다. 이 정자를 지은 운암은 최진립 장군의 증손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 황경원(1709~1787)이 쓴 ‘집청정기(集淸亭記)’를 보면 집청정을 건립하게 된 배경을 잘 설명하고 있다. “포은 선생이 사랑하여 소요하던 곳에 제사를 지내는 사당은 있으나 정자가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포은을 기리고, 장수(藏修:책을 읽고 학문에 힘씀)와 강학(講學:학문을 닦고 연구함)을 증진하기 위해 ‘앞으로 흐르는 아홉 굽이의 맑은 기운을 끌어 모은다(集淸之亭 謂其集九曲之淸也)’는 의미로 반구대 인근에 집청정을 건립하였다”

▲ 청류헌(聽流軒) 현판.

이후 이 정자는 1743년(영조 19)에 불타버렸고 1744년에 다시 건립했다. 이 때 경주부윤 송징계(1690~1772)가 원력을 발휘해 적지 않은 지원을 했다. 현재 건물은 1932년에 재건된 것이다.

집청정은 반구정(盤龜亭)으로 불렸다. 현재 정자에는 ‘집청정(集淸亭)’ ‘청류헌(聽流軒)’ ‘대치루(對峙樓)’라고 적힌 편액과 여러 개의 시판도 걸려 있다. 집청정은 ‘맑음을 모으는 정자’라는 뜻이고, 청류헌은 ‘물 흐르는 소리를 듣는 집’이라는 뜻이며, 대치루는 ‘반구대와 서로 마주하고 바라보는 루(樓)’라는 뜻이다. 반구대 아래의 물 소리를 들으면서 반구대 암벽을 마주 보고 앉아 맑음을 모은다는 의미라고나 할까.

이 외에도 집청정 중건기(1933, 최현채), 집청정 중건 상량문, ‘집청정에서 차운하다’라는 제목의 현판도 있다.
 

▲ 최준식이 묶어낸 <집청정시집>과 내용.

◇가객들 운집했던 집청정과 <집청정시집>조선 후기 집청정에는 많은 관리들과 문인들이 찾아와 경치를 즐기고 정자(亭子) 주인과 시를 주고 받으며 시를 남겼다.

운암 최신기의 9세손인 최준식(최경환)은 이들의 시를 필사해 <집청정시집(集淸亭詩集)>으로 묶었다. 이 시집에는 1600년대 중반부터 1800년대 말까지 지은 406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정자가 세워지기 이전에 반구대를 찾아 시를 남긴 권해의 작품으로부터 갑오경장 때까지 전국 각지에서 모여 든 260여명에 가까운 문인들의 한시가 수록돼 있다. 관리, 선비, 승려 등 유불선을 총망라한 가객들이 집청정으로 구름처럼 모여들어 반구대를 노래한 것이다.

<집청정시집>은 조선 후기부터 근대까지 반구대·집청정 일원의 한문학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다. 울산대곡박물관은 지난 2016년 <역주 집청정시집>을 발간한 바 있는데, 역주자는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성범중 교수다.

<집청정시집>에 나오는 260여명의 가객들 가운데는 경상도관찰사 2명, 경상좌병사 2명, 경주부윤 7명, 울산부사 3명, 언양현감 2명, 동래부사 4명, 양산군수 2명, 자인현감 2명, 영천군수, 영해부사, 순천부사, 승려 6명도 들어 있다.

집청정이 얼마나 유명했는지는 <집청정시집>에 들어 있는 인물들의 면면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글=이재명 논설위원 jmleeSksilbo.co.kr

사진=이재명·울산대곡박물관

참고자료=대곡박물관·<반구대 선사마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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