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구조 변화로 생사 기로에 선 울산
자생력 잃은 도시, 회생마저 어려워도
위기를 기회 삼아 힘찬 비상 이뤄내야

▲ 이재명 논설위원

참담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요즘이다. 울산 동쪽 끝 ‘방어진 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미포만과 염포만이 50년만에 최대의 고비를 맞았다. 바로 배를 만드는 현대중공업과 자동차를 만드는 현대자동차 이야기다.

두 기업은 울산의 신기원을 일으켜 세운 상징이었지만 이제 그 신기원의 마천루가 오히려 먹장구름이 되어 울산 전체를 두껍게 뒤덮기 시작했다. 그 암울한 그늘은 결코 하루아침에 벗겨지지 않을 태세다.

송철호 울산시장은 29일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머리를 깎았다. 비장한 각오를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 송 시장의 삭발식을 보는 것은 현대중공업의 본사 이전 논란을 넘어 태풍 앞에서 마구 흔들리는 울산 전체 경제의 위태로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울산은 제조업으로 일어선 도시다. 조그만 어촌이었던 울산이 소위 ‘급할시’ ‘동아시아의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다 제조업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은 우리나라 제조업의 대표 선수급이었다. 석유화학단지의 끝없는 불빛이 아무리 찬란하다 하더라도 고용규모는 2개 제조업체의 반의 반도 안된다. 하물며 그 두개 모기업에 배속돼 있는 하청업체들의 숫자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러나 현재 울산은 한마디로 말해서 껍데기만 남을 운명에 처했다. 공장만 있고 두뇌는 없는, 망치소리만 있고 실험실은 없는, 노조만 있고 시민은 없는 그런 형국인 것이다.

최근 울산시청에서 열린 ‘자동차산업 미래전망과 고용변화 토론회’는 울산의 생존이 백척간두에 걸려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자리였다. 현대자동차는 오는 2025년이면 엔진과 변속기, 소재사업부 인원 2700명 정도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엔진·변속기 부문에서는 100%, 의장 부문에는 60%의 고용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2025년 쯤에는 내연차 생산 비중이 57%까지 줄어들면서 길거리에는 내연자동차 보다 전기차가 더 많아지는 전환기로 접어들 것이다. 주유소는 갈수록 없어지고 충전소는 많아지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같은 추세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다. 세계적으로 노르웨이와 네덜란드가 202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금지를 선언했고, 독일도 2030년부터 내연차의 생산과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자동차의 패러다임이 혁명적으로 바뀌는 기로에 울산도 함께 서 있다.

조만간 내연차가 없어질 것이라는 소식에 부품업체들도 벌써부터 뒤숭숭하다. 특히 북구 일대를 중심으로 포진해 있는 오토밸리는 지금 갈팡질팡하고 있다. 울산시는 부랴부랴 세계 자동차업계의 재편을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당장 답은 아무 것도 없다. 4차 산업의 공세는 너무나 빨리 왔고, 울산시는 그 동안 너무나 느긋하게 과거의 향수를 누리다 봉변을 당했다.

본사 유치를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현대중공업은 방어진 반도의 진앙지나 다름없다. 울산 조선산업이 최고의 호황을 구가했을 때 현대중공업과 협력업체의 종업원 수는 6만7000명을 넘었다. 그러나 현재 종업원수는 불과 3만2000명으로 반토막났고, 울산의 인구는 2015년 120만명에 이르렀지만 불과 4년만에 5만명이 울산을 떠났다. 동구는 빈집들이 슬럼가를 방불케 한다.

울산 방어진 반도의 동과 서에서 한꺼번에 불어닥친 태풍은 갈수록 거세게 휘몰아칠 것이다. 담장을 부수고 지붕을 날려버릴 것이다.

지금 송철호 시장은 사방이 꽉 막힌 울산의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느낌일 것이다. 도시는 자생력을 잃어가고 시민들은 자부심을 잃어가는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송 시장은 알고 있을 것이다.

울산시민들은 어제 송 시장이 머리를 깎으면서 흘린 눈물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것을, 기회를 놓치면 위기가 온다는 것을.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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