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국가들도 제약없이 사용 가능
한국도 국경에 구애받지 않고
대륙횡단할 수 있는 그날 손꼽아

▲ 김상곤 전 울산시 감사관 독일 만하임대학 초빙 연구원

독일의 고속도로를 아우토반이라고 한다. 자동차 도로라는 뜻이다. 우리는 아우토반이라는 단어를 흔히 속도 무제한이라는 말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음껏 자유롭게 달리는 상상을 덧붙인다. 틀린 말은 아니다. 별다른 제한 표시가 없으면 속도는 자유롭다. 속도 제한이 있는 곳은 반드시 이유가 있다. 공사를 하고 있어서 도로의 일부가 폐쇄되어 있거나 운전자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 있을 경우에만 속도 제한을 한다. 속도에 따르는 일반적인 위험가능성을 국가가 판단하지 않고 철저히 개인의 책임에 맡긴다는 의미다. 언뜻 생각하면 과속에 따른 사고의 위험을 국가가 방치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사고는 속도를 국가가 제한하는 나라보다 많지 않다고 한다. 아우토반을 달려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고속도로 운전에서 가장 조심해온 것이 과속이었다. 속도가 무제한인 아우토반에서도 속도제한 표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고속 운전에 필요한 질서를 정확히 지키는 일이다. 보통 사람들도 속도 제한이 없는 곳에서 시속 150㎞ 정도는 달린다. 그 옆을 휙휙 지나가는 차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공포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속도를 감당하는 것은 철저한 질서의식이다, 추월차선은 항상 자기보다 빨리 달리고 싶어 하는 차를 위해 양보해야 한다. 고속도로 1차선을 줄곧 달리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시속 200㎞로 달리는 차를 가로 막고 운전하는 것은 예의도 아니거니와 사고위험을 높이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처음 아우토반에서 운전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익숙하지 않는 속도 감각이었다. 국내에서 하던 운전습관에 따라 상대차가 조금 양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끼어들다가 위험한 상황에 빠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자기가 우선권이 있는 곳에서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그냥 달리는 것이 아우토반의 질서다. 상대방이 질서를 위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속도 무제한의 신화를 유지하는 또 다른 비결은 아우토반을 최선의 상태로 유지하려는 국가의 노력이다. 유럽을 종단하는 A5번 고속도로를 달려보면 아우토반의 진가를 가장 잘 알 수 있다. 북유럽을 차로 여행한 적이 있었다. 연결된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차의 진동이 시작되면 아우토반이 끝나고 다른 나라로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별다른 국경도 없고 주위의 들판 풍경도 비슷비슷하지만 아우토반과 다른 고속도로의 상태는 확연히 다르다. 서쪽의 프랑스나 남쪽의 스위스도 마찬가지였다.

아우토반을 운전하는 것에 비해 다른 나라의 도로를 운전하는 것은 훨씬 힘이 들고 속도도 느리다. 또 아우토반은 매우 효율적으로 설계되어 있어 길을 잘못 들어도 거의 20분 안에 원하는 곳으로 회복할 수 있다. 더구나 이렇게 편리한 고속도로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고 나오는데 아무런 장벽이 없다.

그러다보니 아우토반은 이제 독일 사람들만의 도로가 아니다. 북유럽뿐만 아니라 폴란드 체코 같은 동유럽 국가의 화물트럭도 스페인, 이탈리아 같은 남쪽 국가로 가기 위해 아우토반을 이용한다. 그래서 독일의 아우토반은 항상 화물차들로 넘쳐난다. 아무런 제한 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화물 트럭을 보면 EU공동체의 실상을 눈으로 체감할 수 있다. 자기 나라의 고속도로를 파괴하는 다른 나라의 화물트럭을 보면 약간의 불만을 가질 것도 같지만 최소한의 비용이외에는 별다른 제약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이러한 장거리 트럭들이 편안하게 운행할 수 있도록 휴게소 마다 트럭들을 위한 주차장이 충분하게 마련되어 있고 운전하는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샤워시설까지 갖추어져 있다. 이익과 손해를 국가적인 단위로 파악하지 않고 유럽 전체로 이해하려는 EU의 정신이 유지되는 배경에는 아우토반의 배려도 큰 몫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오늘도 아우토반에는 유럽을 종단하는 트럭들로 붐비고 있다. 아우토반을 마음껏 달린 이 트럭들이 멈추는 곳은 스위스 국경 검문소다. 여기에 끝도 없이 줄지어 서서 국경을 통과하기를 기다리는 트럭을 보면서 국가라는 개념이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화물트럭이 국경의 제약을 받지 않고 대륙을 횡단할 수 있는 날도 그리 멀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김상곤 전 울산시 감사관 독일 만하임대학 초빙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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