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현 남목중학교 교사

6월의 첫 출근일이었던 월요일. 그간 비소식과 함께 사그라졌던 더위가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곳곳의 창문을 활짝 열어둔 교무실. 연이은 수업 사이 공강 시간에는 이맘때쯤이면 으레 등장하는 단골 멘트가 나온다. “아, 지친다. 여름방학까지 출근일이 얼마 정도 남았죠?” “평일만 계산하면 32일. 힘냅시다!”

내가 근무하는 3층 교무실에는 세 개의 부서가 한 데 모여 치열한 하루를 함께 보낸다. 예체능부, 학생부, 학년부. 부서들의 업무 특성상 학생들과 진지한 대화(!)를 할 일이 무척이나 많은데다 작년부터는 학생자치회 활동이 눈에 띄게 늘어나 교무실은 늘 학생들로 북적인다. 가만히 앉아 교재연구나 행정사무를 하고 있으면 의지와 상관없이 학생들의 사건사고와 관련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전해 듣곤 한다.

학교는 늘 예기치 못한 일들이 생기는 곳이다. 수업을 들어가면 서른 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저마다의 감정과 기대를 가지고 교사와 소통한다. 소통은 잘 이루어질 때도 있고, 교사나 학생 한 쪽 또는 양쪽 모두의 실망으로 끝날 때도 있다. 그날 배울 내용과 자료와 활동을 사전에 촘촘히 계획해가도 직접 교실에 가서 계획을 풀어내면 의도와 다르게 움직일 때도 있다. 마치 스스로 생명력을 가진 것처럼 말이다.

수업뿐만이 아니다. 담임을 맡거나 담임이 아니더라도 생활지도를 담당하는 경우 수업 외의 시간에 학생의 삶 전체와 소통해야 한다. 학생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상세히 이야기를 듣고 이어 학부모와 상담하며 성장 환경, 교우관계, 경제적인 어려움 등을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 애쓴다. 수업보다 감정 소모가 큰데다 해결 후에도 잔상이 남아 교사를 괴롭게 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같은 부서, 같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지만 올해는 유난히 교사의 개입이 필요한 일들이 많았다. 혹자는 스마트 기기에 대한 학생들의 과몰입과 의존이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학생 개개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정 형태의 변화나 경기 침체 같은 요인도 있다.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의 삶은 그 학생이 일으킨 문제와는 별개로 마음이 아프고 애가 쓰인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학생의 어려움과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이고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 때 교사는 절망한다.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선을 벗어났으므로.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아야 하지만 답보에 머무르는 한 명을 포기하고 스물다섯 명에게 더 큰 정성을 쏟을 수 있다면, 교사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지금이 그런 시기다. 3월에는 누구나 싱그런 봄꽃 같은 설렘으로 행복한 한 학기를 꿈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설렘은 온데간데없고 수시로 학생들이 일으키는 문제에 치여, 방학만 되면 뭐든 다 해결될 거라는 망상만 남는다. 그래서 묻고 싶다. 선생님들, 올해의 초심은 안녕하신가요? 지금, 여기에서의 모습은 그 초심에 가깝나요? 가깝지 않다면, 혹시 뭔가 뜨끔한 것이 올라온다면 그 초심을 되새기면서 1학기를 후회 없이 마무리하는 걸 목표로 삼아보면 어떨까요? 이정현 남목중학교 교사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