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목 울산박물관 관장·고고학 박사

재작년 말 신문사에서 매달 암각화에 관한 짧은 칼럼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신통찮은 글솜씨로 시작한지 어느새 일년하고 반년이 지났다. 그 사이 풀리지 않는 매듭 같았던 반구대암각화는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48년 전, 댐속에 수몰된 반구대암각화가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문화유산으로 기본적인 가치 기준이 되는 연대조차 명쾌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갖가지 추측과 가설들이 무성했지만 사실상 방치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반구대암각화의 슬픈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아본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물 밖으로 드러나면 몰지각한 탁본수집가들이 달려들어 바위에 검은 먹물이 가실 날이 없었다. 1994년 무렵 낙동강 수질사고와 극심한 가뭄의 여파로 사연댐 수위를 높이는 승고 계획도 있었다. 수위를 높이면 반구대암각화는 영구히 수장되고 천전리 각석마저 침수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학계와 관련기관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대로 댐 승고 계획은 철회되었다. 지역민들이 위기의 암각화를 구해낸 것이다.

▲ 반구대 암각화.

1995년 반구대암각화는 뒤늦게 국보로 지정되었다. 2004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그림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국제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2010년 문화재청은 직권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했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수많은 인사들이 반구대암각화를 찾아와 유적을 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수자원과 경제적 논리로 인해 보존대책은 늘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암각화는 그렇게 반백년 넘게 자맥질을 거듭해왔다.

작년 새롭게 출범한 지방정부는 사연댐 수위를 낮춰 반구대암각화를 구하고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였다. 지역사회도 그 어느 때보다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관심이 높다. 많은 이들이 세계를 놀라게 할 새로운 역사에 대해서 말한다. 어쩌면 후세에 널리 전해질 이야기는 암각화보다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가 될는지도 모른다. 그 결말은 모두가 바라는 해피엔딩으로 되기를. 이상목 울산박물관 관장·고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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