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전인수나 내로남불식 주장서 탈피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감수하는 행위는
책임 윤리 실천의 출발로 볼 수 있어

▲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과거 모 검찰총장이 취임사에서 검찰권 행사를 올바르게 하겠다는 취지로 “(수사에 있어) 있는 것은 있다 하고, 없는 것은 없다고 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 있는 것을 있다고 하고, 없는 것을 없다고 해야 하는 것은 당위이고, 있는 것을 없다고 하거나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이를 두고 조계종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문, YS대통령이 단식하는 정치인을 찾아가 ‘굶으면 죽는데이’라고 한 말, 그리고 ‘술마시면 취한다’는 말과 함께 ‘4대 명언’이라고 입담좋은 선배가 재미있게 얘기한 기억이 난다. 당연한 사실을 말한 것이지만 당위, 진리, 객관적 진실을 담고 있다는 의미에서 명언(!)일 수도 있겠다.

지금은 병상 투병중인 우리나라 최고 재벌 총수가 10여년전 검찰에서 피의자로 조사받고 나오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죄가 되면 책임지고, 죄가 없으면 책임 안지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뉴스에서 본 일이 있다. 죄가 있으면 처벌받고, 죄가 없으면 처벌받지 않는 것은 상식이다. 이는 범죄에 대한 비난 또는 비난가능성이라고 하는 형벌 책임 이론의 기초로서, 따로 법학공부를 한 것도 아닐진대, 그와 같이 말하는 것을 보고 이것도 명언(!)의 반열에 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사람들의 모든 행위에는 책임이 따른다. 불교의 언어를 빌리지 않더라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행동과 말을 하고, 이로써 원인 내지 업을 만들고, 인과법칙에 따라 책임을 지거나 업보를 받게 되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권리와 의무를 발생시키는 사회적 행위에는 항상 책임이 수반된다. 그런데 오늘날 무책임한 막말과 행동, 더 나아가 결과나 효과, 영향에 대한 심층적인 검토가 미비한 조치나 일들이 행하여지는데 이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될까. 특히 정치 영역에서의 많은 담론들은 각종 토론, 토크쇼, 유튜브, 인터넷 댓글 그리고 각종 미디어가 제공하는 추문과 물의, 고백, 변명, 자기합리화, 상대방 공격 등으로 채워지고 있다. 아니면 말고 식의 말들을 비롯하여 아전인수나 내로남불식 주장과 담론들이 많다. 민주주의적 발전이 이루어진 상황임에도 도덕적 에너지를 포함시키거나 책임 윤리를 실천하는 데에 너무 인색한 현실을 보게 된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가 정치인의 덕목으로 ‘열정, 균형감각, 책임감’을 말하면서 대의와 신념에 대한 열정을 넘어 책임의식을 일깨우는 열정, 그리고 책임의식이 행동을 주도하도록 만드는 열정을 강조하였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진정으로 느끼면서 행동하고, 어느 한 지점에 와서는 “이것이 나의 신념이오, 나는 이 신념과 달리는 행동할 수는 없소”라고 말하면서 책임을 감수하는 자세는 감동적이라고 하였다.

한때 천주교에서 ‘내탓이오 운동’ 즉, 사람들이 자신에게 책임이 더 큼에도 남탓을 하는 풍조를 배격하는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었다. 결정은 자기가 해 놓고 책임은 아래 사람에게 묻거나, 자신들이 한 것임에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책임 윤리에 반한다. 예측할 수 있는 한도내에서 자신의 행동이 가져온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감수하는 자세는 감동적이다. 종종 남을 지독하게 비난하는 경우를 보면서 비난의 내용이 바로 비난하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한 평가에 꼭 들어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논어에서 공자는 ‘군자는 책임을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고 하였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진정으로 느끼고 감수하는 행동에서 소명의 올바른 실천을 보게 된다. 없는 것은 없다고 하거나, 죄가 있으면 책임지겠다는 당연한 말들도 책임 윤리 실천의 출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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