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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강영환의 건축과 문화
[강영환의 여행과 건축, 그리고 문화(35)]샹그릴라를 꿈꾸다부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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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3  21: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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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부의 타쉬쵸 죵(Dzong). 읍성의 행정기관과 사원, 승원을 포함하는 독특한 형식의 요새로, 부탄 건축의 개성을 유감없이 표출한다.

티베트에서 전수받아 발전시킨
부탄의 죵 건축은 하나의 성곽도시
정연한 축·배치로 통합질서 만들어도
단조롭거나 지루함 없어 존경심마저
수도 팀부에 근대화 물결 밀려들어도
도시와 건축은 정체성의 노력 뚜렷해
국가발전의 목표로 잡은 ‘행복 증진’
유례없는 그 지향점의 실현에 기대감


인도문명의 북방전파 루트를 따라 북으로 향하면 네팔에서 히말라야에 막힌다. 동으로 꺽은 전파경로는 오늘날 방글라데시를 지나 동남아시아로 연결된다. 여기서 북쪽으로 향하는 길은 다시 히말라야의 동쪽 끝 부탄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 지리적으로나 지형적으로 부탄은 인도에 접하는 히말라야권 국가이니 인도문명권의 주변부라고 인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부탄에 대한 심각한 오해이며, 편견이다.

‘국민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여기는 나라’ ‘지구상의 마지막 샹그릴라’ ‘은둔의 왕국’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도상의 위치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부탄이라는 작은 나라가 오늘날 이렇게 소개되곤 한다. 국민소득이 3천 달러도 안 되는 저개발국가에 대한 별명치고는 너무 과장된 표현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과분한 명성을 얻게 되었을까?

새벽에 방콕을 떠난 비행기는 시외버스처럼 인도의 북방도시를 들러 부탄으로 향한다. 창밖으로 히말라야의 설봉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비행기는 히말라야 계곡사이를 파고들다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으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파로(Paro)공항에 착륙을 시도한다. 조정사들이야 손에 땀을 쥐는 모험이겠지만 계곡 속의 파로공항은 히말라야의 육중함과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가슴을 지그시 누르는 압박감을 느끼고야 이곳이 해발 2000m가 넘는 고산지대임을 깨닫게 된다.

공항에서 수도까지도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수도 팀푸에 접근하면서 비교적 높은 건물들이 밀집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건물의 양식은 하나같이 전통적이다. 정부가 도시건축의 양식은 전통으로, 높이는 7층 이하로 규제한다고 한다. 도시경관의 전통적 맥락을 보존하기 위한 정책은 성공한 듯 보이지만 획일적인 단순함은 피하기 어렵다. 도로는 좁고 차량은 많으나, 인도나 네팔만큼 혼란스럽지는 않다. 끼어드는 차량도 드물거니와 경적소리도 듣기 어렵다.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 농촌 소도시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부탄의 건축을 특징짓는 것은 단연 죵(Dzong)이라는 독특한 성채이다. 이는 읍성의 행정기관과 사원, 승원을 포함하는 독특한 형식의 요새였다. 내부에는 관청구역과 사원구역을 구분했는데, 이는 행정과 종교가 권력을 분점하고 있었음을 반영한다. 물론 기능이나 유형적으로는 티베트의 죵 건축을 전수받았지만, 부탄에서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저층부는 분명 견고한 성벽인데 상층부는 왕궁과 같은 화려함과 위엄을 갖는다. 위로 올라갈수록 커지는 창호의 변화는 티베트의 성채와 비슷하지만 수평으로 길게 뻗는 처마를 가진 다층 다겹의 지붕은 부탄건축의 개성을 유감없이 표출한다. 이 궁벽진 산골에서 어쩌면 이렇게 당당하고 아름다운 건축을 만들 수 있었을까? 주변에 심은 화단마저 빈곤한 저개발국이라는 선입견을 부끄럽게 만든다.

입구에서 만나는 단청의 화려함은 내부공간에 대한 기대를 고조시킨다. 그 기대는 조금도 빗나가지 않았다. 루하 진입같은 입구를 지나 펼쳐진 중정에는 거대한 망루형 건물이 시선을 압도한다. 중정(doshe)은 2층짜리 ㅁ자형 건물로 둘러싸였는데, 그 모서리 중 3곳에는 3층 망루를 세웠다. 그 중정의 한 가운데서 망루형의 중앙탑(central tower)이 하늘을 향해 치솟는다.

이렇듯 우아하고 늠름한 디자인을 본적이 있었던가. 죵 건축은 건축의 형상과 각 부 요소들의 조합과 구성, 재료의 질감과 색채 구성 등 구성적 미학에서는 단연 압권이다. 경사지게 올라가는 사다리꼴 형태, 작지만 강한 흡인력을 갖는 계단과 입구, 위로 갈수록 점점 더 커지고 돌출하는 창호, 마지막으로 넓게 펼쳐지는 지붕의 시원함까지 완결적인 구성미를 표출한다.

죵은 하나의 성곽도시이다. 방어가 가능하도록 성벽으로 둘러싸고, 전투에 사용되도록 여장과 같은 창호를 두었다. 고립된 상황 속에서도 생활을 지속할 수 있도록 자족적인 시설과 공간을 제공했다. 다양한 도시적 시설과 공간, 행위들이 효과적으로 나뉘고 통합되어 있다. 수도원조차 무겁거나 근엄하지 않다. 정연한 축과 배치로서 통합적 질서를 만들었지만 결코 단조롭거나 지루하지 않다. 미개하고 저속한 민속풍의 건축일 것이라는 편견과 오해가 단번에 무너지면서 존경심마저 우러난다.

   
▲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명예교수

부탄이 왕정을 시작한지는 고작 백년 여에 지나지 않는다. 부탄의 4대 왕은 왕권을 양위하고 헌법을 제정하여 입헌군주제로 전환할 것을 선언했다. 국민소득이 3000달러에도 못 미치는 가난한 나라에서 그가 추구했던 국가 발전의 목표는 놀랍게도 ‘경제적 성장(GDP)’이 아니라 ‘행복의 증진(GNH)’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국정운영의 지표를 마련했다. 첫째, 지속 가능하고 공평한 사회·경제 발전. 둘째, 생태계의 보전과 회복. 셋째, 부탄의 전통과 정체성을 실현하는 문화의 보전과 증진. 넷째, 앞의 세 가지를 달성할 수 있는 좋은 거버넌스의 구축이 그것이다.

공평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는 가능한 것일까? 무차별적 평등만을 주장한다면 통제와 획일화를 피할 수 없고, 개성과 자유를 앞세운다면 차별화는 피할 수 없는 법. 자본주의라는 탐욕의 시스템을 도입하면서도 공평하고 활력 있는 사회발전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수도 팀부는 바야흐로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 하지만 도시와 건축은 생태계를 존중하고, 전통과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뚜렷하다. 그들이 정말 ‘행복의 나라’에 도달할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그 길을 가는 그들이 부럽기만 하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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