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현 울산시 남북교류협력추진단 공동단장

남북교류협력 사업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한 인사가 강연중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북과 사업을 오래 하다 보니 마음속에 한 가지 원칙이 생겼다고 한다. “북과 사업을 하려면 두 마리 개를 조심해야 합니다. 한 마리는 편견이고 한 마리는 선입견이지요.” 2013년 8월29일, 조선일보는 현송월의 처형을 대서특필했다. 내용도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해 충격을 주었다. 그녀가 음란물 영상물을 촬영해 판매하다 걸려 강건 종합군관학교 전술훈련장에서 30발씩 장탄된 기관총 3정의 일제사격으로 처참히 처형됐다는 것이다. 신문은 친절하게 은하수관현악단 출신인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인 리설주여사가 배후에 있다는 분석기사까지 겯들이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과 각별한 관계에 부담을 느껴온 리설주 여사가 자신의 심복라인을 가동해 현송월 제거 명분을 찾아 결국 성공한 것이란 얘기였다.

현송월은 2018년 2월 북측 예술단 삼지연 관현악단 단장으로 악단을 이끌고 방남하였으며, 4월 남측 예술단의 평양공연에서도 삼지연 관현악단 단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많은 국민들이 현송월의 건재함을 보며 “예수님 부활이후 최대의 부활”이라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북의 실상은 언제나 음습한 가십거리요 블랙코미디로 그려진다. 그러나 진짜 해악은 무엇이었을까? 막장 드라마같은 김정은 위원장의 외도, 리설주 여사의 투기, 북의 음란물 유통, 잔인한 처형방식 등은 실제유무와 상관없이 그냥 이미지로 남아 버렸다는 것이다.

2019년 5월31일, 조선일보는 다시 김영철과 김혁철의 숙청을 1면 톱기사로 실었다. 하노이 정상회담의 실무협상을 맡았던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 특별대표와 외무성 실무자들을 협상 결렬 책임을 물어 처형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제에 포섭돼 수령을 배신했다’는 미제 스파이 혐의가 적용됐고 처형장은 미림비행장이라고 적시했다. 뿐만 아니라 대미 협상을 총괄했던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도 혁명화 조치(강제노역 및 사상교육)를 당했고 하노이 회담에서 통역을 맡았던 신혜영도 결정적 통역 실수로 “최고 존엄의 권위를 훼손했다”며 정치범수용소에 갇히고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도 근신조치를 당했다고 보도했다.

6월3일 북의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는 제2기 제7차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에서 당선된 군부대의 공연을 관람했으며 김영철 부위원장이 김정은 위원장 왼편으로 다섯번째 자리에 수행단의 한 일원으로 앉아 있었다. 이어 6월4일자 신문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 5·1 경기장에서 대집단 체조·공연 ‘인민의 나라’를 관람한 소식을 전하며 김여정이 수행원으로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이 공개한 사진에서 김여정은 리설주 여사의 오른편에 앉아 머리띠 차림으로 손뼉을 치고 있다. 조선일보의 희대의 오보에 대해 누구도 언론중재위에 고소하지 않았다. 신문사 역시 사과하거나 정정보도하거나 혹은 스스로 폐간하지 않았다. 또 많은 국민들은 혀를 차며 웃고 넘겨버렸지만 북은 다시 깊은 상처를 입었다. 외교나 행정에 실패하면 당연히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러나 북은 잔인하게 죽여 버린다는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이다. 조선일보의 ‘아님 말고’식의 기사는 끊임없이 북을 인권유린과 몰상식의 국가라는 혐오감을 확산시켜왔다.

최근 필자는 우연히 술좌석에서 금강산관광을 멈춰서게 한 피격사건을 두고 언쟁을 벌이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다가 북에 대한 그릇된 편견과 선입견이 어떻게 재생산되는지 깨닫게 되었다. “민간인임을 뻔히 알면서도 총을 쏠 수 있나? 정말 북한사람들은 잔인하고 인간성이 틀렸어” 듣고 있던 또 다른 친구가 대답했다. “깜깜한 밤에 출입금지 구역 철책안으로 들어가 멈추라는 방송에 응하지 않고 뛰니까 그렇지” 먼저 입을 열었던 친구는 말문이 막히는지 느닷없이 “기관총, 대포로 처형한다잖아. 아무튼 끔찍한 족속이라니까”라며 ‘북의 숙청’을 언급했다. 필자는 순간 탄식했다. 철책 초병의 발포와 잔인한 숙청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북의 현송월 숙청은 거짓말로 드러났지만 이후 아무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필자는 상식적인 국가로 북을 보는 것이야말로 모든 문제의 첫출발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이런 말을 하면 빨갱이로 몰리는 것 아닌가라는 자기 검열의 비겁함과도 맞서야겠다고 결심했다. 개는 결코 저절로 크지 않는다.

김창현 울산시 남북교류협력추진단 공동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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