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울산을 방문했다. 지난 수십년동안 중앙 정부 관계자의 문화재 관련 울산 방문이라면 으레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 문제와 관련이 있었다. 지난해 9월 취임한 정 청장도 올 1월 반구대 암각화를 다녀갔다. 불과 5개월여만에 재방문인데, 그 목적지가 반구대 암각화가 아니라 북구 신흥사와 기박산성, 달천철장 등 덜 알려진 문화유적지였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소속인 이상헌(울산 북구) 국회의원의 초청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울산문화유산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문화재청이 지방 문화유산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는 국가지정 문화재의 보존에 문제가 발생했거나 국가 문화재로 지정해야 할만큼 중요한 유적이 새로 발굴됐을 때 등이다. 이번 정청장의 울산방문이 주목을 끄는 이유는 이 두가지 중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흥사 구 대웅전은 1998년 울산시문화재재료 9호로, 석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2019년 울산시유형문화재 38호로, 달천철장은 2003년 시지정기념물 40호로 지정됐다. 기박산성과 관련해서는 북구 주민들에 의해 20년째 연례행사로 의병문화제가 개최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 문화유적의 스토리나 오늘날에 미친 영향력을 고려하면 그저 대수롭잖은 유적으로 묻어놓기엔 아까운 측면이 없지 않다. 이상헌 의원이 정청장을 초청해서 현장을 둘러보면서 관심을 촉구한 것도 그가 의원이 되기 전부터 오랫동안 이들 문화유적에 애정을 갖고 관련 활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기박산성과 신흥사는 그 역사를 따져보면 우리나라의 의병역사를 새롭게 쓸 수 있다. 울산이 왜군에게 함락되자 의병들은 기박산성에 진을 쳤다. 임란때 작성된 <제월당실기>에는 1592년 4월21일 300명이 기박산성에 모여 의병을 일으켰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조선왕조실록>에 곽재우 장군이 같은해 4월24일 전국에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켰다는 기록보다도 며칠 앞서는 것이다. 건흥사(신흥사의 옛 이름)는 울산지역에서 승군 동원 기록이 있는 유일한 사찰이다. 건흥사의 지운스님은 승병 100명을 이끌고 의병으로 참여했다. 절의 양식 300여석을 군량미로 내놓기도 했다. 석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도 전쟁에서 희생한 백성과 의병, 승병의 영혼을 위로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조성했다는 발원문이 복장물로 출토됐다.

달천철장은 울산이 우리나라 근대화를 이끈 특정공업지구가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며 이미 삼한시대부터 ‘울산은 산업수도였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자료로 삼을 수 있다. <세종실록지지리>에 ‘1452년 달천에서 생산된 철 1만2500근이 수납됐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폭넓은 울산역사문화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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