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면 추석명절이다. 누구나 추석을 떠올릴 땐 고향에 계신 부모형제들과 성묘를 생각하며 다소 들뜬 마음이 된다. 그런데 올 추석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장기간 경기침체가 모두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돌아가신 시부모님, 친정부모님 모두를 찾아보아야 하는 필자도 왠지 무거운 마음이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 명절을 기다리는 설레임 때문에 며칠 전부터 잠을 못 이루었던 어렸을 때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당시는 명절에 대한 막연한 기대만이 아니라 새 신을 신게 되고, 새 옷을 입을 수 있게 되고, 멀리서 온 친척오빠, 동생들을 만날 수 있고, 온갖 음식을 넉넉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어른아이 가리지 않고 기다렸었다. 그야말로 제대로 잠도 안자고 기다리곤 했었다.

 명절맞이 준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엄마를 따라 떡방앗간에 가는 것이었다. 떡쌀을 빻을 땐 송편생각에 절로 배가 불러왔다. 농익은 과일이 먹고싶어 부엌 뒤편에 쪼그리고 앉아 포도와 배를 몰래 훔쳐먹었던 기억도 새롭다. 정말이지 꿀맛이었다.

 이웃 간에 인심을 나누는 것도 명절 때는 더욱 활발했다. 요즘 말로 사랑실천 나누기가 절로 이루졌다. 떡을 이웃에게 돌림으로써 정도 나누고 더불어 액막이를 하는 미신도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명절맞이 재미가 요즘은 예전같지 않다. 명절이 다가오면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해 두통에 시달리는 주부가 많다고 한다. 대가족도 아니고 단촐한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모이면 음식을 장만해야 하고 설거지에 몸이 피곤해 질 것이라는 심리적 압박감 때문이란다.

 그래서 아예 지방의 콘도나 해외에서 명절을 지내는 것이 편리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세태가 되었다. 그야말로 명절고유의 의미가 퇴색되고 말았다. 어찌 보면 우리 모두의 가슴에는 따뜻함과 넉넉함보다는 이기적이고 펀리함만이 가득하고 이해에 밝은 냉랭함이 가득하게 되었나 보다. 세상은 차가운 판단과 논리보다는 정이 가득해야 살맛이 나는데 말이다.

 못 살던 그 시절, 타향살이를 하는 아들·딸들이 연로한 부모님을 생각해서 고향 하늘을 바라보고 먼 산에 절을 하기도 했던 그때가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어려웠던 그 때는 오히려 이웃과 동기간에 서로 정을 나누고, 조상을 섬기는데 충실했었다. 훈훈한 인심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이맘때쯤이면 의례 불우이웃을 돌아보던 이가 많았는데, 점점 한낱 구호에 불과해 지고 있다. 사회가 분화되고 생활수준이 높아질수록 나와 내 가족만 잘되면 된다는 이기적인 문화가 판을 치면서 더욱 각박해진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인간미 상실을 야기하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떡값"으로 대변되는 주고받는 선물의 순수한 향기마저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아 향수만 그리워하게 된다. 70년대 중반, 재일동포 거류민단의 추석성묘단 초청행사가 이뤄졌을 때 자신의 일처럼 국민적 관심과 환영열기에 휩싸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 한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추석명절 만이라도 천만 이산가족 가운데 형편이 닿는 일부만이라도 남북한간에 서로 왕래하며, 조상께 성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떻까 한다. 진정한 이산가족 찾기의 일환이 되고, 크게는 민족동질성 회복과 통일에 기여하는 방안이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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