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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경상시론
[경상시론]문화예의를 향해 내딛는 한걸음시민들에게 사랑받는 태화강변
놀고 마시는 소비적 공간 아닌
문화예술의 성지로 다듬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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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20  22:2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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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숙희 무용가·전 영산대 초빙교수

눈을 비비고 기지개를 켜고 하루를 보낼 힘을 얻기에는 베토벤이나 바흐가 최고다. 연습실로 가는 길에는 마리아칼라스, 파바로티의 기름진 소리로 나의 하루를 축복한다. 늦은 밤은 씁쓸하고 달콤한 존콜트랜, 니나시몬스, 제니스 조플린 같은 이들의 재즈는 아닐지라도 신촌 블루스, 이장희, 한영애, 최백호에 이르는 대중노래로 하루의 고단함과 상처를 위로 받는다.

그러나 실상은 그건 바람이다. 오랫동안 꽤 많은 음악을 들어오면서도 음악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대부분 춤을 염두에 두고 음악을 들었기 때문이리라. 무용가로서 필수적 음악 듣기는 강박적으로 음악을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나의 평안을 위해 일요일은 음향기기를 대부분 끈다. 고요함 가운데서 가끔 들리는 자동차소리 또는 빗소리,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 소리를 들으며 이리저리 뒹굴거나 책을 읽기도 한다. 이렇게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집안의 시계소리,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나의 삶을 확인시켜준다.

그렇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은 아무래도 침묵인 것 같다. 무용가로서 춤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음악을 듣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러나 아주 가끔 음악을 들으면서도 내가 무용가라는 것을 잊을 때가 있다. 음악 속에서 정적을 느끼는 정지된 순간이다. 침묵 속에서 나는 나의 몸으로부터 나오는 소리를 듣는다. 숨쉬는 소리, 심장의 고동소리, 그리고 맥박이 뛰는 소리를. 이 소리들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시킨다.

그런데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행복을 주며 어두운 힘을 밀쳐내고 구제받을 수 있듯 큰 힘을 주는 소리가 있다. 그것은 바람에 나뭇잎이 사각이는 소리다. 큰 대추나무의 작은 이파리가 바람에 사각이는 혹은 곧게 자란 대나무의 이파리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이다. 울산의 대표적 명소 태화강변 대숲은 바람과 함께하는 치유의 숲이다. 아마 많은 사람에게도 치유의 숲이리라.

너무 좋아하는 탓일까. 대한민국 제2호 국가정원을 추진 중인 태화강 일원이 무질서한 텐트족 난입과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어린자녀를 둔 가족이나 연인, 젊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태화강 텐트피크닉이 필수코스로 자리 잡아가는 것이다. 그 인기를 증명하듯 텐트를 포함해 돗자리와 테이블을 대여해주는 곳도 생겼다.

태화강은 생태하천의 성공적 예로 꼽힌다. 강의 주변공간은 목적에 의해 새로운 공간으로 변화되고 다듬어졌으며 본연의 강변 공간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도시와 사회는 각각의 목적에 충실한 공간 생태를 만들어내고 그곳은 오가는 이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네트워크를 가지며 유기적 흐름을 갖게 된다. 게다가 그 공간에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콘텐츠를 만들어 패러다임을 구성하게 되면 사람들은 함께 공간을 누리며 새로운 문화적 힘을 만들어 내게 된다.

공간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크고 작은 변화가능성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결국 공간은 사람을 바꾸게 되는데 이 숙제의 공간에 예술, 디자인, 도시역사 등 지역사회와 연결하는 카테고리 구축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울산시민들이 참여자이자 협업자가 되기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공공의 공간 속 사람들이 스스로 어떤 것을 탐색하며, 배우고, 움직이고, 직접 만들기도 하는 자발적 사회구성원으로 바뀔 수 있는 마중물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태화강변을 물리적 장소나 구조로 이해하고 접근해서는 안된다. 기존 공간이 가진 자연의 힘을 보존하면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도시재생으로서의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 공간에 대한 인식이 놀고 마시는 소비적 공간으로 전략하지 않고 문화예술의 보고로 성지인듯 존중받고 아낌받는 곳이어야 한다. 삶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자랑스럽고 자긍심 있는 문화예술 공간으로서의 막중한 책임을 안고 있는 공간으로 탄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공간 재생의 초점은 사람이어야 한다. 구불구불 흐르는 태화강에 스토리를 입혀 예술의 성지로 자랑할 수 있도록 디자인해야 한다. 문화예의를 향한 순탄한 물꼬가 틔워지길 바란다.

현숙희 무용가·전 영산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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