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현 농협이념중앙교육원 교수

지난해 3월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안이 국회에서 심의조차 되지 못하며 헌법개정 논의 자체가 수면 아래로 들어간 형국이다. 2017년 활발했던 개헌 논의 국면에서 범농업계는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는 농업의 가치를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모처럼 한 목소리를 냈다. 국민도 농업계와 뜻을 함께했다. 2017년 11월 농협을 중심으로 한 ‘농업가치 헌법반영 1000만명 서명운동’은 한 달여 만에 무려 1153만명의 참여를 이끌어 냈다.

이러한 농업계의 강력한 요구와 국민적 지지는 여야의 동참도 이끌어냈다. 여야 각 당이 마련한 자체 개헌안과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에 ‘농업의 공익적 기능’이 명시된 것이다. 하지만 권력구조 개편 등을 두고 여야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기한내 의결이 무산됐다.

차가운 길거리에서 상인들의 전단지에 눈빛 하나도 주지않던 시민들이 농업가치 헌법반영운동에 동참해달라는 말에 스스럼없이 주머니 속에서 손을 꺼내 펜을 들어 서명운동이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져나간 것은 일방적으로 농업을 도와줘야 한다는 기존 입장이 아닌 ‘농업을 살리는 것이 국민에게도 좋다’는 것을 국민들 스스로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1.8%가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에 공감하고 있고, 이를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데 74.5%가 찬성을 표시한 것은 국민적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되었다는 방증이다. 특히 농업·농촌에 대한 향수가 옅은 젊은 세대에게 식량안보, 환경·생태보전, 전통문화와 농촌경관 유지 등 농업이 보유한 공익적 기능에 대한 공감대를 얻어낸 것은 농업에 새로운 우군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상황이 달라지면 내 생각도 바뀝니다.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경제학자 케인즈가 자신이 말을 자주 바꾼다고 비판한 사람에게 응수한 말이라고 한다. 상황이 달라지면 그에 따른 판단도 달라져야 한다. 헌법도 마찬가지다. 현행 헌법이 개정된 지 30년 이상이 지났다. 헌법 내 농업·농촌 관련 조항도 오늘날 상황을 제대로 투영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케인스의 말대로 헌법의 내용과 지향해야 할 바를 바꾸는 게 당연할 것이다. 헌법은 국가의 최상위법으로 어떤 방향성을 가지느냐에 따라 농정방향과 농업·농촌의 미래가 달라진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높이는 일은 단지 농업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 모두의 공익을 높이기 위한 것이며, 이를 보호·육성하는 것은 국가가 해야할 당연한 의무이다. 또한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농업인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가치를 따져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

동시에 국민들이 보여준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을 유지하는 방안을 농업계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고민해야 한다. 162조원으로 추산되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 중 88%에 해당하는 143조원이 환경보전과 관련돼 있다. 국민들의 머릿속에, 또 마음속에 고향인 우리 농촌이 그들의 상상하는 것처럼 한 폭의 수채화같이 아름답게 가꾸어 5000만 국민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

또 농촌의 복지와 문화, 의료 등 농업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업들의 동참을 이끌어내는데 앞장서야할 뿐 아니라 젊은 세대들이 농촌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농업의 가능성을 인식시키는데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농업가치 헌법반영은 국민들의 서명의 힘이 아니라 국민들 스스로 자각한 의지의 힘으로 달성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헌의 불씨가 완전히 사그라진 것이 아닌 만큼 농업가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더 넓혀야 할 때다. 김종현 농협이념중앙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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