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 완벽한 계획은 없어
다양한 시도로 노하우를 습득하면
좀 더 의미있는 계획 세울 수 있어

▲ 이창기 한국은행 울산본부 기획조사팀장

박사학위를 할 때의 일이다. 학위를 취득하기에 충분해 보이는 분이 오랜 시간 학위를 마치지 못하다가 결국 학위를 중단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분은 굉장히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로 학문의 깊이가 상당함에도 완전한 이해가 선행되기 전까지는 논문의 주제를 확정하지 않았다. 논문작성을 위해 필요한 계획을 오랜 기간 고민하다 결국 6~7년 시간동안 매듭을 짓지 못했다. 반면 학위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떤 분은 준비가 다소 미흡했음에도 불구하고 세미나에 자주 참석해 본인의 주제에 대해 소개하곤 했다. 대다수 학생이 저것도 논문거리가 될까 의구심을 품은 가운데, 그 분은 청중들에게 지적을 자주 받아가며 본인의 논문을 다듬고 살을 붙이길 반복하다 조기에 학위를 취득하였다. SCI에 게재될 정도로 논문의 수준 또한 상당했었다.

한번쯤 들어보았을 ‘마시멜로 챌린지’라는 게임 얘기도 이와 같은 내용을 다룬다. 미국의 피터 스킬먼이 고안한 이 게임은 처음 보는 네 명이 둥근 테이블에 둘러 앉아 18분 안에 주어진 재료로 가장 높은 탑을 쌓는 게임이다. 참가자 4명에게는 스무 가닥의 스파게티 면, 접착테이프, 실, 그리고 마시멜로가 주어지며 종료시점에는 바닥에서부터 마시멜로 위치까지의 높이를 측정한다.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탑을 쌓을 수 있으며 다양한 직업군에 따라 탑을 쌓은 방식과 결과가 다르다는 점이 흥미롭다. 하지만 미국 MBA 학생들이나 변호사처럼 명석한 사람들이 쌓은 탑의 높이가 유치원생들이 쌓은 탑의 높이보다 현저히 낮다는 의외의 결과도 눈길을 끈다.

소위 명석한 사람들 그룹은 게임이 시작되면 우선 각자의 명함을 돌린 후 어떻게 이 게임에서 이길 수 있을지 계획을 짠다고 한다. 다양한 가설과 나름의 과학원리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계획을 짜고 계획이 확정되면 거기에 맞춰 차곡차곡 탑을 쌓다가 종료직전에 마시멜로를 올려놓는데, 대개 탑은 무너지거나 생각한 만큼의 높이에 도달하지 못하게 된다. 이에 반해 유치원생그룹은 계획을 세우지 않고 주어진 재료로 바로 탑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래서 성공하면 좀 더 높은 탑을 쌓고, 다음에는 다리를 붙이고 가지를 뻗고 안테나를 올리는 방식으로 탑의 높이를 점차 올린다고 한다.

치밀한 계획 없이 일단 실행에 옮겨보는 것이다. 작은 탑을 하나 쌓으면, “이거 너무 낮은데,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하면서 조금 전의 것을 무너뜨리거나 수정하면서 조금 더 높은 탑을 쌓는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니까 또 해볼까라는 식으로, 계속 성공하면서 조금씩 더 높은 탑을 쌓는데 이른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쌓은 탑을 관찰해보면, 탑의 다리 맨 밑을 접착테이프로 동여매어 안정성을 높인 모습도 관찰된다고 한다. 이건 실제 여러 시도를 해보면서 자연스럽게 세워진 전략일 것이다.

우리는 종종 계획을 세우는데 많은 시간을 투여한다. 그리고 계획을 얼마나 잘 세웠는지를 중요하게 여기며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었는지 따져본다. 심지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처음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결과가 더 좋더라도 왜 처음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지 않았는지 책임을 묻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일은 계획할 수 없는 게 다반사다. 그리고 개선은 계획으로 이루어지기보다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중요한 건 계획을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완수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보다 유익한 것은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법을 배워가는 것일 수 있다. 계획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끊임없이 바뀌는 상황에 맞춰 계획을 수정하면서 실행해 나간다면, 그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처음해보는 일에서는 계획보다 실행력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물론 계획이 주는 유익함도 적지 않다. 설령 계획을 완수하지 않더라도 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배우게 된다. 또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해 사고의 외연을 넓힐 수 있다. 따라서 보다 간결하게 계획을 세우고 일단 실행을 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나면 한번 해본 경험을 가지고 좀 더 의미 있는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계획, 노후 계획, 자식들 인생에 대한 계획 등 무수한 계획을 세우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계획 중 성공적으로 완수한 계획의 비율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점에서, 꼼꼼함이 절대적으로 요구되지 않는 일부터, 혹은 계획이 의도한대로 세워지지 않을 때, 일단 실행에 옮기면서 점차 목표에 도달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창기 한국은행 울산본부 기획조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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