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의 모순에 빠진 건 아닌지
취임 슬로건 냉정히 되짚어 보고
시정 공감대 높이려는 노력 더해야

▲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새들이 울 때 제 이름을 부르면서 운다는 거 알아? 딱따구리는 딱따구르르 하고 부엉이는 부엉부엉 하고 까마귀도 소쩍새도 다 그래. 제 이름을 부르면서 울지.” 1994년에 나온 은희경의 장편소설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에 이런 대목이 있다. 그랬다. 울음소리를 이름으로 붙인 사람들 때문이긴 하지만 사람사는 세상에서 보면 새들은 제 이름에 정체성을 담고 울 때도 그 이름을 부른다.

정치인들은 부모가 준 이름 대신 스스로 지은 구호(口號 슬로건)에 가치관을 담는다. 구호는 유권자와의 공감을 쉽게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당선되고 나면 오히려 구호와는 정반대의 길로 가는 정치인이 많다. 가치관과 상관없이 득표를 위한 구호를 만들었거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가치관의 모순에 빠진 결과다. 일상에서도 가치관의 모순에 빠진 사람을 목격하기는 어렵지 않다. 불통(不通)이 문제라고 목청을 높이는 사람은 그 조직에서 가장 소통(疏通)이 안 되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말이 많아 주위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는 사람이 ‘말 많은 사람이 제일 싫다’고 강하게 고개를 내젓기도 한다. 가치관은 어디에서 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엄중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갖고 부단히 노력해야만 비로소 지켜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재선에 도전하는 구호로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Keep America Great)’를 내세웠다. 미국우선주의를 통한 경제적 성장이 곧 ‘위대한 미국’이라고 우긴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주변국의 입장에서 보면 ‘도량이나 능력, 업적 따위가 뛰어나고 훌륭하다’는 뜻의 위대함과는 분명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가치관의 모순이다. 2020년 11월3일 대선에서 국민들이 그의 구호를 어떻게 평가할 지 궁금하다.

지방정부가 새로 출범한지 어느새 1년이다. 보수에서 진보로 단체장들이 모조리 바뀌면서 울산은 크나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한해를 보냈다. 단체장들은 한결같이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며 몇 가지 성과를 손꼽는다. 모두가 나름 열심히 해왔음을 부정하고 싶지는 없다. 그러나 주민들의 시정(施政) 공감대가 높지 않음도 사실이다. 혹시 그들이 내세웠던 구호(가치관)의 모순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보아야 할 때다.

울산시의 슬로건은 ‘시민과 함께 다시 뛰는 울산’이다. 취임일성으로 소통을 시정철학으로 삼겠다고 했지만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소통이었다고 송시장도 시인했다. 남구는 ‘주민이 먼저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있다. 울주군은 ‘사람이 희망’이라고 했다. 북구는 ‘사람 중심’을 앞세웠다. 시정지지도 ‘꼴찌’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와 있는 울산시 뿐 아니라 기초단체들에서도 ‘주민’ 또는 ‘사람’들이 행정의 중심에 있다는 평가는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말폭탄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거나 맥락도 없는 권위의식으로 인해 대화조차 불가능하다는 불만이 적잖이 들린다. 중구와 동구는 ‘새로운 시작’을 외쳤다. 그런데 시작은커녕 과거에 매달려 제자리걸음이다. 생활정치가 우선돼야 하는 지방정치를 이념 대결로 몰아가면서 새로운 시작이라고 포장하려 해서는 안 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새로운 길을 찾아 주민들을 설득하고 이끌어나가는 ‘새로운 시작’이 못내 아쉽다.

앞으로 3년이나 남았다. 누구와 소통할 것인지,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 왜 사람이 희망인지, 내 편만 중심에 둔 것은 아닌지, 어떤 게 새로운 시작인지…, 혹여 가치관의 모순이라는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고 차분하게 점검해볼 때다. 소설의 주인공은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슬프게 우는 동물이 새인 것 같다’고 했다. 가치관의 모순은 울음이 된 새 이름처럼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ulsan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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