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능인 사회적기업 미담장학회 대표

취업난을 겪는 청년과 대학 진학에 매일같이 고민하는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공정’이라는 단어의 중요성이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하며,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것이라고 약속했다. 필자의 생각에도 평등, 공정, 정의는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다. 다만 공정, 정의 등의 기준을 정할 권한을 어떠한 일방적 주체(특히 정부)가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생각이 다른 구성원을 전부 ‘불공정’ ‘부정의’로 매도한다면 사회적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서울 숙명여고에서 교무부장이 자녀인 쌍둥이 자매에게 시험지를 유출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분명히 공정성이 무너진 것이 맞다. 법원에서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확실한 증거를 바탕으로 선고를 했다면 정의구현 원칙에도 부합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교육 당국은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직계 존·비속 및 특수관계인이 같은 학교에서 사제관계로 만날 가능성을 배제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제도를 논의하고 수정하는 과정은 노력과 시간이 많이 들어서 그런지 화끈하게 ‘내신성적 무효화’ ‘수시 전형 폐지’ ‘대입 100% 정시 전형 도입’ 등의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도 있다. 이 시점에서 본질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과연 창의성, 가능성의 시대라 불리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 5지선다형 수능 성적을 잘 받는 순으로만 고등교육 기회를 준다면 그건 진짜 공정한 것일까?

최근 교육계에서 또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전북교육청이 상산고등학교의 자립형사립고등학교 지정을 취소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교육부장관이 지정 취소에 대한 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전북교육청에서는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한다. 공정하게 평가한 것이기 때문에 결과도 정의로울 것이라고 믿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자의적 ‘공정’은 매우 큰 ‘불공정’을 야기할 뿐이다. 다른 시·도 교육청의 경우 자사고 재지정의 기준 점수가 70점인데, 전북교육청만 그 기준을 일방적으로 80점으로 올렸고 상산고 평가와 관련하여 사회적 배려자 전형 비율 점수를 법적 의무와는 무관하게 강제 적용하였다. 이러한 자의적 공정을 바탕으로 상산고의 평가 점수가 0.39점 모자라자 상산고의 자립형사립고등학교 지정을 취소하겠다고 한다. 많은 수험생과 애증 관계인 ‘수학의 정석’ 저자로 유명한 상산고등학교 설립자는 400억원대의 사재를 기부해 인재를 키우겠다던 꿈을 노년에 강제로 박탈당하게 생겼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전북교육청의 일방적 점수 자르기를 보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떠오른다. ‘공정’이라는 이름의 ‘결과적 평등’ 추구 정책을 통해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권, 교육자의 사유재산권을 모두를 침해하는 결과는 정의로운 결과일까?

대한민국 헌법 제31조제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를 명시하고 있다. 해당 헌법 조항이 말하는 ‘균등한 교육기회’는 능력 외의 다른 여건에 의해 교육받을 기회가 없어서는 안된다는 ‘권리 보장’ 선언이지, 능력을 가진 청소년들이 능력에 맞게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해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공정’이라는 이름의 표백제는 때가 묻은 곳에 선별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모든 곳에 표백제를 뿌리면 사회는 개성을 잃고 탈색되어 버린다. 장능인 사회적기업 미담장학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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