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호 철학박사

과학이 모든 문제에 답할 수 있을까? 과학이 발전하면 지성인들이 골몰해온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과학은 실로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왔다. 우리는 과학이 발전한 혜택을 고스란히 누리며 살고 있다. 손에 늘 쥐어 있는 스마트폰, 가끔 틀리기도 하지만 일상에서 꼭 필요한 일기예보, 주름개선용 크림, MRI와 CT 촬영을 통한 건강검진, 각종 질병에 대한 예방접종 등등. 물리학, 생물학, 신경과학, 화학 등이 알아낸 지식이 적용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과학은 인류를 무지의 어둠 속에서 구해내기도 했다. 중세시대 유럽사회를 공포로 몰아 넣었던 흑사병의 원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세균 발견에 의해 해소되었다. 과학은 참으로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보니, 과학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쉽게 믿기도 한다. 심지어 철학은 더 이상 우리에게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는 학문의 영역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믿음이다.

상대의 논증을 평가하지 않고 상대의 인격적 허점을 대신 공격할 때 인신 공격의 오류를 범한다는 사실을 과학은 말해주지 못한다.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에게 부당한 고통을 가하거나 불행한 삶을 초래하게 하는 조혼 풍습이나 명예 살인과 같은 행위는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 지에 관해서 과학은 아무 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만일 과학적 지식이 무속인의 말보다 더 가치 있다면 왜 그러한지, 과학은 발전하고 있는지, 발전하고 있다면 과학은 어떻게 발전하는지에 대해서조차도 과학은 일차적으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행복한 삶은 어떤 삶인지에 대해서도 과학은 침묵한다. 왜 그럴까? 과학이 무능해서? 아니다. 다만 과학이 일차적으로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설득력 있는 말과 글의 이치를 탐구하는 논리학,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의 기준을 탐구하는 윤리학, 과학의 본성을 캐묻는 과학 철학 등등.

과학은 만능이 아니다. 과학은 법칙의 발견과 실험 등을 통해서 원인과 결과를 파악해내고 미래를 예측한다. 그러나 과학의 손아귀에 잡히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바로 이 지점이 과학이 끝나고 철학이 시작되는 지점이고, 삶의 이야기와 예술이 출현하는 지점이다. 김남호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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