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장마는 흔히들 비가 오래도록 내리는 성가신 귀신 같다고 해서 ‘長摩(장마)’고 부르지만 사실은 순우리말이다. 한자로는 매실이 익어갈 즈음 내린다고 해서 매우(梅雨), 오랫동안 내린다고 구우(久雨), 더운 여름날에 내린다고 서우(暑雨), 오랫동안 쌓이면서 내린다고 적우(積雨)라고도 한다.

1979년 제작된 거장 유현목 감독의 작품 <장마>라는 영화가 있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진실(眞實)과 정의(正義)는 다름 아닌 ‘화해(和解)’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

<장마>는 6·25가 발발한 뒤 전라도의 한 작은 마을로 피난을 온 외가 식구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 동만이라는 소년의 눈으로 보는 이야기다. 동만에게는 삼촌이 두명이 있다. 한명은 친 삼촌인 순철(이대근)이고 또 한명은 길준(강우석)이다. 북한군이 마을을 점령하면서 순철은 철저한 공산주의자가 되고, 우익운동을 했던 길준은 소위로 임관해 최전선에 스스로 나선다.

유현목 감독은 영화를 이념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담담하게 이끌어간다. 그러면서 시대의 아픔을 묵묵히, 세밀하게 지켜보게 만든다.

한 때 순철과 길준은 형, 동생하는 사이였지만 두 사람은 어느새 이데올로기의 기로에 선다. 사돈네 집에 피난 내려온 외할머니(황정순)는 아들 길준은 못잊고, 친할머니는 경찰의 빨치산 토벌 작전에 아들 순철을 잃는다. 같은 집에 살고 있는 두 사돈은 철천지 원수가 되어 버렸다.

외할머니는 누워 있는 동만이의 고추를 만지며 묻는다.
“동만아! 너…외삼촌이 좋으냐, 친삼촌이 좋으냐?”
외할머니는 말한다. “대답하기 힘들쟈……그럴테지, 언제든지 팔은 안으로만 휘는 벱이니께”

▲ 영화 <장마>

전쟁이 끝나갈 무렵, 친할머니는 아들 순철이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자 고모(박정자)와 함께 무당을 찾아간다. 그로부터 음력 유월 열엿새 순철이 돌아올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그러나 그날 마당에는 순철 대신 엄청나게 큰 구렁이가 나타났다.

영화는 외할머니가 구렁이를 위로해 좋은 곳으로 인도하면서 끝난다. 한 집에 살았던 사돈과 삼촌간의 갈등은 구렁이를 위무하면서 화해의 장을 만들어 낸다.

장마 때는 ‘물꼬 전쟁’이 반복된다. 물꼬는 위쪽 논의 물을 빼는 통로이면서 아래쪽 논에 물을 가두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소통은 이렇듯 물꼬의 역할과 같아서 15㎝만 높여도 물의 소통은 단절된다. 남북미 정상이 66년만에 판문점에서 만나 높이 15㎝(군사분계선)의 장벽에 물꼬를 텄다. 이재명 논설위원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