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로 회사 존망이 흔들릴 때
많은 고민과 공부 끝에 찾아낸 ‘기본’
초심으로 최선 다하면 안 될 일 없어

▲ 서재곤 대형타이어유류(주) 대표이사

사업 7년차이던 1998년 IMF금융위기가 닥쳤다. 은행의 대출금리가 뉴스에서 보는 것처럼 상승하기 시작하더니 통장에서 자동 인출되어 가는 대출이자가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회사를 찾는 고객의 숫자도 계속 감소했다. 경쟁사가 제품의 가격을 내림에 따라 하는 수 없이 거의 마진 없이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가끔 경쟁사의 광고지를 보면 사업 의욕을 잃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 뿐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 회사를 책임지고 있던 직원이 회사의 고객을 모조리 데리고 회사 근처에서 창업을 했다. 어느 날 그 회사에 가보니 낯익은 고객들이 그득했다. 너무나 충격이 컸으나 차마 누구에게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내에게도 3년이 지나 마음의 평정을 얻은 뒤에야 비로소 말 할 수 있었다.

중소기업가에게 있어 IMF금융위기는 마치 난폭 운전자의 차나 높은 파도 속을 항해하는 배를 탄 것과 같았다. 눈을 뜨고 아침을 맞는 것이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초등학생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조차 힘겨웠다. 회사를 남 몰래 매각하고 울산을 떠나고 싶었지만 이런 위기 앞에 회사를 매입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서점으로 달려가서 위기관리에 대한 책을 샀다. 수 십 권의 책을 읽고 머리에 남는 한 줄의 결론은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글귀였다. 사업에 필요한 기본이 무엇인지를 생각나는 대로 정리하여 즉시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 기본에는 화장실 청소하는 것도 있고 녹슨 건물이나 기계를 페인트칠하는 것도 있었다. 매장 바닥의 청소도 필요했다. 또 기본 중에는 핵심적인 사업이 아닌 부분을 포기하는 것도 있었다. 특히 이 사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전문 공부는 기본 중에 기본이었다. 공부에 열정을 보이자 훌륭한 선생님이 나타났다. 제품을 공급하는 제조사의 임원이 토요일 마다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서 울산까지 내려와서 과외수업을 해주었다. 그는 20여년 인생의 멘토가 됐다.

시간이 경과하니 당장 이윤이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고객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트럭버스타이어 전문가라는 소문이 나면서 전문성을 요하는 문제들이 내 차지로 돌아왔다. 고객들이 회사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신기한 광경이었다. 이때 또 새로운 선생님이 나타났다. 미국에 있는 재생타이어 원료공급회사 한국책임자가 방문했다. 내가 고객에게 서비스하는 장면을 보고 다른 조건 좋은 경쟁자를 남겨두고 나에게 딜러망 가입을 허락했다.

2008년 금융위기가 왔을 때는 한 단계 높은 기본을 지키기 위해서 투자를 결심했다. 유로화가 1700원이 넘는 것을 보면서 타이어 검사 기계를 구입하기 위해 독일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타이어는 안전해야 한다는 첫 번째 커미트먼트(Commitment)를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새로운 고무 전문 과외 선생님을 찾았다. 그의 도움으로 타이어에 필요한 고무 제품을 생산하고 그 제품으로 타이어를 생산하여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새 기록을 남기면서 2010년 말 외국계 회사에 회사를 매각했다. 타이어는 한번 사용하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처럼 두 번 세 번 다시 사용할 수 있어야하고 또 비행기 타이어처럼 여러 번 사용할 수 있어야한다는 두 번째 커미트먼트(Commitment)을 남겨두고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책속에서 만난 스승 한분이 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다. 경영은 원칙을 살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그를 통해 배웠다.

5년의 세월이 흘렀고 두 가지의 커미트먼트(Commitment) 흔적은 내가 없는 그 회사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그 회사를 다시 매입했다. 다시 돌아 왔을 때 이전에 있었던 고객들은 아무도 없었다. 후배들도 “전과는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원리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생각하며 그들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어디 진리가 변하는 것인가. 서재곤 대형타이어유류(주)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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