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며칠 전이었다. 그늘진 나무의자에 앉아있는 필자의 무릎 위로 새 한 마리가 떨어져 앉았다. 막 둥지를 떠난 어린 ‘찌르레기’였다. 찌르레기는 이맘때 흔히 볼 수 있는 참새보다 조금 큰 여름새다. 살며시 잡고 머리를 쓰다듬으니 눈을 마주치기를 꺼려하지 않는다. 어느새 어미 새가 날아와 쉼 없이 지저귀며 주위를 맴돈다. ‘찌르르, 찌르르’, 식겁한 어미 새의 울부짖음이 더해지며 숲은 더욱 요란해졌다. 나는 얼른 어미 새를 향해 새끼를 놓아 주었다. 새 소리도 마음이 가야만 들리는 모양이다. 무심했던 숲에서는 이소(離巢)를 끝낸 어린 산새들의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원앙새의 이소과정이 TV를 통해 소개된 바 있었다. 화면에서는 방금 알에서 부화한 병아리들이 줄줄이 수 십m 난간 아래로 몸을 던진다. 몸무게만큼의 중력 그대로 떨어져 즉사했을 것 같았는데 뒤뚱뒤뚱 일어나 어미를 따라 줄지어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실로 놀라운 반전이었다. 원앙새는 족제비나 뱀 등의 천적을 피해 수 십m 정도 높이의 나무나 건축물의 틈새에 둥지를 틀고 9~12개 정도 알을 낳는데 알은 한 달 정도면 부화한다. 다른 새들은 새끼가 어느 정도 날갯짓을 하여 충분히 날 수 있을 때 둥지를 떠나지만 원앙새는 알에서 부화해 물기가 마르자마자 둥지를 떠난다.

둥지는 안락함의 상징이다. 둥지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우리의 뇌는 ‘위기상황’으로 인식한다. 크든 작든 변화를 향한 시도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안락함에 머무르게 되면 삶의 정체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정체된 삶은 곧 고통을 수반한다. 삶의 지나친 안녕을 경계해야 되는 이유다. 이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 주립대 총장이었던 강성모 박사가 전하는 말이다. ‘자신을 위기상황으로 몰고 가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참뜻은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라는 말이 아니라 나태한 일상의 둥지로부터 벗어나라는 의미다.

숲은 어린 새들의 지저귐으로 어느새 활기찬 동적 모드로 전환되었다. 안락한 둥지를 떠날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들 앞에 펼쳐지는 세상은 날로 놀랍고 새로울 것이다. 그들의 재잘거림은 경탄(驚歎)에 다름 아니다. 이 미세한 경탄의 파동은 거대한 울림이 되어 7월의 숲을 흔든다.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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