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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그림이 있는 에세이
[그림이 있는 에세이]은행나무 단풍나무 - 정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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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04  21: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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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여름날-최은정作 ; 그 나무는 지난 여름 그 자리에 또다시 새 잎을 내민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같은 색 같은 모양은 아니지만 제각각 지난 가을 스러졌던 그 이파리를 그대로 빼닮았다.

이른 봄날, 산길에서 절집을 만났다. 법당과 요사체가 함께 붙어있는 작은 도량이었다. 마당 끝에 아름드리 몇 그루의 나무들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 주었다. 법당에 들러 부처님께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나무그늘 아래 놓인 평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 위에 엉덩이를 슬그머니 걸치고 사방을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얼른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누워서 눈을 감았다. 바람도 솔솔 불어 극락이 따로 없었다.

깜박 잠이 들었나보다. 나뭇가지들 사이로 내려앉은 햇살이 눈부셨다. 겨울을 나느라고 발가벗은 나뭇가지에는 새 잎들이 막 돋아나고 있었다. 마치 잠에서 갓 깨어난 아가들의 기지개처럼, 꼬물꼬물 펼치고 있었다. ‘너희들 엄마는 누구니?’ 하다가 눈이 멈춘 곳에서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앙증맞은 이파리들은 ‘우리는 아기 은행잎이에요.’ 하는 것 같았다. 놀라운 것은 색깔과 크기만 다를 뿐, 어리디 어린 것들이 큰 은행나무 잎과 똑같이 생겼다는 것이다.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가슴이 벅차올랐다. 주위에 있는 다른 나무들은 어떤가하고 살펴보았다. 아가의 다섯 손가락이 활짝 펼친 것처럼 보이는 손톱만한 크기의 애기 잎도 똑같이 닮았다.

‘카톡’ 소리에 휴대폰을 열어보니 환히 웃고 있는 손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 얼굴을 보니 지난해 여름일이 밀물처럼 다가왔다. 100년 만에 찾아온 더위라고 매스컴마다 연일 야단들이었다. 그런 날에 나는 왼쪽 팔에 깁스를 하고 두 달을 보냈다. 보는 이들마다 걱정하는 걱정소리가 민망해서 외출하기가 망설여졌다.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딸과 며느리가 집으로 내려왔다. 다섯 살인 외손자와 두 돌을 갓 넘긴 친손자도 함께 왔다. 오랜만에 두 손자들을 곁에 두고 볼 수 있어서 아픈 것도 잊었다.

남자 애들이라 부산하기는 해도 집안에 활기가 가득했다. 둘은 눈만 뜨면 서로 찾고, 사이좋게 잘 지냈다. 소꿉놀이, 병원놀이, 딱지놀이, 퍼즐놀이 등 잠깐도 가만있지 않았다. 노는 걸 보고 있으면 제 아빠들의 모습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며느리와 딸도 “데칼코마니다, 붕어빵이다.”며 이구동성 닮은 점들을 쏟아냈다.

딸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과자를 찾는 것과 엄지발가락의 발톱이 치켜든 것이나 발이 너무 빨리 크는 것이 아빠를 꼭 닮아서 속상하다고 했다. 대신 책 읽기나 음악듣기를 좋아하고 잘생긴 얼굴을 닮아서 다행이란다.

친 손자는 아들의 어린 시절을 다시보기 하는 것 같았다. 말하는 표정, 웃는 모습, 활달한 외향적 성격, 왼손잡이까지 닮았다. 특히 손자까지 3대가 지나치게 육식을 좋아하는 것도 너무 닮았다, ‘피는 못 속인다’ 라는 속담이 절로 생각났다.

인기척이 나서 돌아보니 하얀 다포를 덮은 다관을 들고 있는 비구니 스님이 서 있었다. 얼른 일어나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하니 연잎 차 한 잔하자고 했다. 스님은 찻잔을 데우면서 나를 바라보며 ‘보살님은 무얼 그렇게 재미있어 했느냐’고 물었다. 순간, 다 들켰구나 싶어 움찔했다. 법당에 들어갈 때부터 다 보고 있었다며 같이 나누자고 슬슬 재촉을 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어쩔 수 없이 은행나무, 단풍나무 새싹과 손자들 이야기까지 다 털어놓았다. 그리고는 얼마나 건성건성 살았으면 이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고 놀라는 자신이 부끄럽다고 덧붙였다.

“보살님은 호기심이 대단하십니다. 저는 매일 보는 이 나무들의 어린 싹을 자세히 살펴보지도 비교해 본 적도 없었는걸요.”

스님은 유전자 못지않게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살면서 만들어지는 개체변이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차는 은은한 향이 어우러져 맑고 부드러웠다. 마음이 편안하고 힘이 난다고 했더니 언제라도 또 오란다. 작별인사를 하고 나오는 하늘 한편에는 노을빛이 번지고 있었다.

스님이 가르쳐 준 지름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스님이 강조하던 개체변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아 걸음을 더디게 했다. 거기다가 며느리와 지인의 경험담까지 떠올랐다. 아들이 다리를 다쳐서 식탁위에 다리를 올리고 식사를 한 적이 몇 번 있었단다. 그것을 본 손자가 식탁위에 다리 올리기를 고집을 해서 애를 먹었단다. 지인은 어린 아들이 화장실에 들어가서 한참동안 나오지 않아서 가만히 들여다보았단다. 아이는 다리를 꼬고 변기에 앉아서 손가락 사이에 이쑤시개를 끼고 담배 피우는 흉내를 내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 일 때문에 아빠가 담배를 끊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부모에게 받은 유전인자가 기본 바탕이 되고, 살면서 교육이나 직업 환경 등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습득한 개체변이도 피할 수 없다.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사회의 올바른 구성원이 되는 데는 환경요인이 유전인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스님의 말이 십분 이해가 되었다. 산 아래서 자라던 활엽수를 산 정상에다 옮겨 심어놓고 10년 후 찾아가 살펴보니 잎이 침엽수로 변해 가더라는 어느 식물학자의 이야기도 생각난다.

은행나무 단풍나무들도 계절의 변화에 따라 주변을 아름답게 만들어 간다.

   
▲ 정미연씨

■정미연씨는
·2012년 울산문학 수필 부문 신인상 수상
·울산문학협회 회원
·울산수필 회원
 

 

 

 

 

   
▲ 최은정씨

■최은정씨는
·대구아트페어개인부스전
·울산미술대전 특선 및 입선
·울산미술협회·울산수채화협회 회원
·울산사생회·은가비·모자이크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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