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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판 살인의 추억’왜 무죄됐나?,“합리적 의심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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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11  18: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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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 증거만으로는 불충분…“백 명의 죄인 놓쳐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 없어야” 9년 전 인천 ‘낙지 살인사건’도 같은 취지로 무죄 선고

‘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일컬어지던 보육교사 피살사건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장기미제로 남아있게 됐다.

법원이 11일 강간살인 혐의로 구속기소 된 택시기사 박모(50)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경찰과 검찰은 피고인이 범인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미세섬유와 폐쇄회로(CC) TV 영상, 과학수사로 도출한 모든 간접 증거가 오직 박씨 한 사람만을 가리키고 있다며 유죄 입증을 확신했지만, 법원은 수사당국이 제시한 증거물이 피고인의 혐의를 입증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어떤 이유로 박씨의 무죄를 선고한 것일까.

◇ 합리적 의심 들지 않도록 범죄 입증해야

이번 사건의 쟁점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뒷받침할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CCTV 영상, 피고인의 의류 및 택시에서 검출된 미세섬유 증거와 같은 간접증거들이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특히, 피고인은 자신이 운행하는 택시에 피해자를 태우지 않았다고 경찰 수사 초기부터 계속해서 주장해오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사건 심리를 맡은 제주지법 형사2부(정봉기 부장판사)는 “사건 당시 피해자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여성 승객을 태웠다는 다른 택시기사의 제보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가 피고인이 아닌 제3자가 운전한 차량 또는 택시에 탑승했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 피해자의 신체에서 피고인의 의류에서 검출한 미세섬유와 유사한 진청색 면섬유가 검출됐지만, 대량으로 생산·사용되는 면섬유의 특성상 유사하다고 볼 수 있을지언정 동일하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며 미세섬유 증거를 인정하지 않았다.

피고인의 차량으로 보이는 택시가 녹화된 폐쇄회로(CC)TV 영상도 마찬가지다.

재판부는 CCTV 영상의 해상도가 떨어지고 검사가 제출한 영상 및 분석 결과만으로 영상 속 차량이 피고인의 택시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공소사실에서 전제한 범인의 이동 경로 중간에 다수의 도로가 존재하기 때문에 범인이 수사기관에서 추정한 이동 경로대로 이동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일부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점이 있고, 통화내역을 삭제하는 등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으나,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범행이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즉, 간접 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하려면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사실이 증명돼야 함을 강조했다. 

피고인 박씨는 2009년 2월 1일 새벽 자신이 몰던 택시에 탄 보육교사 A(당시 27·여)씨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치자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애월읍 농로 배수로에 유기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 사건은 ‘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리며 장기 미제로 남아있었다. 

경찰은 2016년 2월 장기미제 전담팀을 꾸리면서 수사를 재개했다. 

경찰은 박씨의 차량 운전석과 좌석, 트렁크 등과 옷에서 A씨가 사망 당시 착용한 옷과 유사한 실오라기를 다량 발견, 미세증거 증폭 기술을 이용해 증거를 확보했다. 

경찰은 확보한 증거물을 바탕으로 지난해 5월 18일 박씨를 긴급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해당 증거가 박씨의 범행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검찰은 1차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후 전담수사팀을 구성해 보강수사를 진행, A씨의 피부와 소지품에서도 박씨가 당시 착용한 것과 유사한 셔츠 실오라기를 찾았다. 

또한 이 같은 증거와 당시 택시 이동 경로가 찍힌 CCTV 증거를 토대로 사건 당일 박씨가 차량에서 A씨와 신체적 접촉을 했다고 판단, 지난해 12월 박씨를 구속했다. 

◇ 비슷한 사건은 또 있었다

2010년 인천에서 발생한 이른바 ‘낙지 살인사건’도 3심까지 이어진 재판 끝에 법원은 간접 증거만으로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봤다. 

이 사건은 여자친구의 사망보험금을 노린 살인사건으로 관심을 모았다.

김모(당시 32세)씨는 2010년 4월 19일 새벽 인천의 한 모텔에서 여자친구인 윤모(당시 21세)씨를 질식시켜 숨지게 한 뒤 윤씨가 낙지를 먹다 숨졌다고 속여 사망 보험금 2억원을 챙긴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씨는 당시 윤씨 명의의 보험계약변경신청서를 위조해 자신을 보험수익자로 변경한 뒤 윤씨를 살해해 보험금을 편취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윤씨가 숨지기 한 달 전에 생명보험에 가입했고 보험금 수령인이 법정상속인에서 남자친구인 김씨로 바뀐 데다 김씨가 보험금을 받고 유족과 연락을 끊으면서 김씨는 용의자로 의심을 받았다. 

처음에 사고사로 종결됐다가 사건 발생 5개월 만에 경찰이 재수사에 나섰지만, 윤씨의 시신이 이미 화장돼 직접 증거가 없다는 점에서 유죄판결 여부가 주목됐다.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고 1심 재판부는 살인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무기징역 형을 선고했지만 2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3심에선 무죄를 선고한 2심을 확정했다.

당시 대법원은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제출된 간접 증거만으로는 김씨가 여자친구 윤씨를 강제로 질식시켜 숨지게 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윤씨가 저항한 흔적이 없고 김씨가 보험계약에 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낙지를 먹다 질식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밝혔다. 

낙지 살인사건은 대법원에서 무죄로 확정됐지만, 이것이 ‘피고인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그의 범죄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음을 의미할 뿐이다. 

‘백 명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자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말로 대표되는 형사소송의 기본 원칙에 따라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존재한다면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는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의 원칙’이 이번 보육교사 피살사건 판결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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