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②

▲ 세계 최고의 수도원으로 손꼽히는 탁상 곰파. 절벽 틈새를 비집고 절묘하게 들어앉은 독특한 형태의 사원으로 자연과 건축의 융합이 절묘하다.

히말라야 계곡에 숨겨진 나라 부탄
험준한 절경 속에 자리잡은 수도원
탁상 곰파, 최고의 성지이자 건축물
자연과 건축물 완벽한 조화 이뤄

생명과 행복의 근원인 자연보호 위해
개발과 경제성장 대신 보존구역 지정
국토 50% 보호하고 동물 이동로 설치
생명들 더불어 사는 공생에 가치 우선

부탄은 히말라야 깊은 계곡 속에 숨겨진 나라다. 가까운 이웃마을에 가려해도 한계령 같이 험준한 고개를 넘어야 하니 통일국가를 이루기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피신과 은둔처에는 적합하지만 다른 문명과 교류는 어려운 환경이다. 탐욕적으로 확산하던 인도문명이나 중국문명도, 심지어 20세기 서구제국의 식민지 개척도 이곳만은 피해갔다. 침략해 봤자 별로 빼앗을 것도 없으려니와 사나운 산골사람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으리라. 부탄은 단 한 번도 타민족에게 지배를 당하지 않은 나라에 손꼽히게 되었다.

고준한 첩첩 산중에서 삶의 터전을 만들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큰 마을과 도시는 기후가 안정되고, 물줄기가 흐르며, 논밭을 만들 수 있는 계곡에 자리 잡았다. 협착한 계곡 사이에 농토를 일구다보면 마을은 산자락 경사면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히말라야 계곡의 품에 안겨 고유한 삶의 환경을 만들고 지켜왔다.

호텔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푸나카(punaka)의 전경은 절경이 아니지만 감동적이다. 도시가 이렇게 목가적일 수 있을까? 거대한 산줄기를 따라 길고 넓게 이어지는 들녘과 휘돌아 나가는 강물은 광활한 파노라마의 배경이 된다. 아침저녁으로 산허리를 구름이 감싸면 수묵화의 아련한 장면을 연출하곤 한다. 시간은 산허리 안개처럼 멈춘 듯 가는 듯, 몇 백년 전에도 그랬을 법하지만 온종일 멍 때리고 앉아있어도 결코 지루하지 않다.

한창 모내기가 시작된 계단식 논은 거울조각을 박은 모자이크처럼 반짝인다. 그 가운데 살포시 앉은 농가들, 그리고 계곡을 에워싸는 웅장한 히말라야의 산들이 샹그릴라를 그려낸다. 평화, 안식, 그리고 자연 속에 안긴 인간의 조화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이들이 자연을 사랑하고 보존하고 그것으로부터 행복을 찾으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내 것이 아닌데 바라만 보고 있어도 기쁘고 행복하다.

곰파(Gompa)라고 부르는 수도원을 찾아간다. 종교를 불문하고 모든 수도자들은 속세로부터 격리된 장소를 찾아 수도처를 만들었다. 세속의 모든 관계로부터 자유롭고, 수도에 방해받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험준한 지형은 수도원에 적합한 지형이었다. 험준한 지형 속의 수도원은 장소의 신비로움과 더불어 절경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리스의 마테오라, 몬테네그로의 오스트로그 등 세계적인 수도원들은 단지 그 건축 때문이 아니라 지형과 건축의 융합적 경관 때문에 세계적인 명소가 된 것이다.

탁상 곰파는 부탄 최고의 성지이며, 최고의 건축으로 손꼽힌다. 부탄을 소개하는 어떤 책자에도 이 건축의 사진은 빠지지 않는다. 절벽 틈새를 비집고 절묘하게 들어앉은 독특한 형태의 사원 오로지 그 사진이 나를 부탄에 오게 만든 장본인이다. 해발 3000m가 넘는 고지를 네댓 시간 걸어 올라야 할 것이라는 엄포도 그리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겨우 30여분 쯤 올랐을까. 숨은 점차 거칠어지고 가슴에는 옥죄어드는 압박감을 느낀다. 간간히 찾아오는 현기증,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운동화 비슷한 얇은 신발도 교만함을 꾸짖듯 발걸음을 고통스럽게 한다. 그 와중에도 길섶에 세운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네 등산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불주의’나 ‘쓰레기 투기 금지’따위의 겁주는 경고문이겠거니 하고 훑어본다.

뜻밖에도 거기에는 ‘자연은 모든 행복의 근원임을 명심하시오(Remember Nature is the source of all happiness)’라고 적혀있다. 정신이 번쩍 들만큼 충격적이다. 그제서야 온 길을 되돌아본다. 안개 사이로 웅장한 산줄기와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이 슬며시 나타난다. 지구상에서 사라져가는 수많은 생물들을 품어 살린 거대한 피난처. 부탄인들은 그 뭇생명과 더불어 사는 것을 행복의 근원으로 생각한 것이다.

▲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숨이 깔딱깔딱 넘어갈 즈음 엷어지는 안개 사이로 거대한 절벽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옴 마니 밧 메훔! 수 백미터를 수직으로 깎아지른 거대한 절벽, 하늘에서 쏟아지는 한줄기 폭포, 꼬불거리며 오르내리는 절벽의 계단 길, 경악에 가까운 전율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절벽의 틈새를 타고 앉은 수도원은 잇몸과 틀니처럼 완벽하게 일체화 된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지붕들이 절벽에 피어난 춘란처럼 찬란하다. 탁상 곰파가 세계 최고의 수도원으로 손꼽히는 것은 자연과 건축이 완벽한 융합을 이룬 까닭이리라.

부탄인들은 자연 생태계의 보존을 국가정책의 기본방향으로 설정했다. 그에 따른 정책으로써 전 국토의 50% 이상을 절대보존구역으로 지정했다. 거기에 특별한 비경이나 절경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보존구역 사이에는 생태통로(biological corridor)를 두어 동물의 이동로를 제공했다. 그들은 개발이 가져다줄 경제성장의 달콤함을 몰랐을까. 아니 뭇생명이 어울려 사는 공생의 가치를 더 우위에 두었을 것이다.

자연은 행복의 근원이며, 더 나아가 생명의 근원이다. 더 이상 어떤 수사가 필요하랴. 자연은 비단 동·식물의 서식처만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서식지라는 점을 몰랐을까. 근대문명이래 인간은 스스로 그 서식지를 파괴하고 있다.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자행되어 온 자연파괴에는 늘 공생을 거부하는 인간의 탐욕이 숨어 있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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