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산, 백운산과 함께 솥발형태를 이루고 있는 고헌산(1033m)이 양팔을 벌려 보듬고 있는 구량벌을 따라 자리하고 있는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구량리(九良里).

 야트막한 산자락을 병풍삼아 들판중간에 오순도순 모여앉아 담쟁이 넝쿨로 돌담을 감싸 안으며 한껏 정겨움을 자랑한다. 500살이 넘은 은행나무는 역사의 증인인 듯 마을 한가운데에서 꿋꿋이 서 있다.

 고헌산은 두서면내 가장 높은 산으로 언양읍과 상북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정상에는 지금도 산성의 자취가 남아 있으며 고래로부터 기우제를 지내는 신성한 장소로 전해지고 있다.

 구량리는 언양읍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으로 두서면에 속해 있으면서도 언양읍을 생활권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논농사를 위주로 살아가는 전형적인 농촌과는 다소 다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물량의 이동이 편리하면서도 시골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이점으로 물류센터, 양계장과 양돈장이 줄줄이 들어섰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농사를 천직으로 삼아 살아오던 주민들의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다.

 중리 이상춘씨(62)는 "양계장과 양돈장 9곳이 마을을 에워싸고 있어 바람이 고헌산에서 골짜기를 따라 내려오는 이른 봄과 한여름에는 악취로 방문을 열어놓고 살지 못한다"며 "몰과 메기가 지천으로 살 정도로 맑고 깨끗했던 구량천에는 이제 그 어느 것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구량리는 신라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너른 들판으로 구량벌 또는 구량화촌으로 불려지고 경주 남면에 속해있을 당시에는 남중리라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구량리로 옛이름을 다시 찾았으며 송정마을과 중리마을의 2개 행정마을로 이뤄져 있다. 송정마을은 87가구에 남자 112명 여자 105명 등 217명이, 중리마을은 91가구 남자 130명 여자 115명 등 245명이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구량리에 살고 있는 주민수는 20% 가량 적다. 노부모 봉양으로 혜택을 받으려는 자녀들이 주소지를 명목상으로 이전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독거노인이나 가족단위의 이주도 늘고 있다. 생활보호대상자에 대한 농어촌혜택을 받기 위해서이다. 빈집은 내놓기가 바쁘게 팔리고 세놓는 집을 찾아달라는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 송정마을 이장 김학용씨(53)는 "가족수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20만원선의 생활보조비에 의료보험과 전기세 등의 혜택을 보기위해 이곳에 이주한 가구가 최근 2년새 4~5집이나 있다"고 말했다.

 송정마을은 울창한 숲이 자리한 동네라는 뜻에서 이름지어 졌으나 지금은 노거수 두그루와 하천가 버드나무 몇그루만 남아 있을 뿐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숲이 자리한 자리에는 현재 선박의 대형 피스톤을 제작하는 중소기업 (주)케이프와 훼미리마트 물류센타가 들어서 있다. 조수자씨(50)는 "오래전 몇몇 주민들이 숲을 벌채하고 이 곳에 공장을 짓도록 하는데 동의해 요모양이 됐다"며 "쇳가루와 각종 오염물질 방출로 샘물조차 마음놓고 먹지 못하는 동네로 전락하게 됐다"고 한탄했다.

 송정마을 아랫부분은 두동면 천천리와 다소 특이한 형상으로 갈라져 있다. 좁은 마을길이 두서·두동면의 경계다. 국도 35호선편은 두동면 천전리, 건너편은 두서면 구량리로 돼 있다. 김학용씨는 "일제시대때에는 이 좁은 소방도로가 국도였다"며 "옛 국도를 따라 두동·두서면이 갈라져 있었으나 국도 35선이 새로 나면서 이렇게 한마을이 서로 다른 면으로 갈라져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정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논농사에 의존한다. 중소기업 2곳에 5~6명이 종사하기도 하지만 나머지는 모두 소규모 한우 사육과 논·밭농사에 의존한다. 소값파동이 있기 전에는 가구당 10마리 가까이 한우를 사육했으나 폭락으로 인한 피해를 본 뒤부터는 사육가구와 규모가 절반이하로 크게 줄었다.

 중리마을은 천연기념물 64호 두서 은행나무가 가장 큰 자랑거리이다. 수령 550년에 높이 22m, 둘레 12m의 초대형 은행나무로 봄부터 낙엽이 지기까지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두서 은행나무는 고려후기 학자인 익제 이제현 선생의 4대손인 이지대 선생이 1394년 왜구가 탄 배를 붙잡은 공으로 벼슬을 하다 낙향하면서 연못가에 심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석신씨(70)는 "두서 은행나무는 숫나무여서 은행이 열리지 않고 10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김해김씨 재실 등의 은행나무 세그루에는 은행이 무지하게 많이 열린다"며 "몇년전만해도 원기를 잃어가던 은행나무가 가지치기와 영양주사, 거름주기 등으로 이제는 완전히 정상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중리마을은 천연기념물의 자랑거리가 있는 반면 골칫거리도 안고 있다. 양계장 7곳과 양돈장 2곳에서 나는 악취가 심각한 지경이다. 대부분 외지인들이 운영하고 있는 계사와 돈사는 초창기 소규모로 짓겠다고 주민들을 설득해 자리를 잡은 뒤 점차 확대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근에는 마을 오른편 산에 토취장 허가까지 나는 바람에 주민들이 집단으로 반발하고 있다.

 박춘열 중리마을 이장(55)은 "닭과 돼지 사육으로 인한 악취와 오염으로 지하 100m 이하의 암반수를 끌어올려 식수로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 토취장까지 생겨나면 어떻게 될지 뻔한 것 아니냐"며 "토취장 허가 반려를 위한 진정서를 제출하고 주민들의 집단 항의방문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시민들의 식수원인 사연댐으로 직접 흘러드는 구량천이 주민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점차 시들어 가고 있다. 최석복기자 csb7365@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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