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세련 아동문학가

<엄니>는 따듯한 이름이다. 푸근하고 정겹다. 아픈 이름이기도 하며 고단하고 신산한 삶의 대명사다. 대한민국의 엄니는 그렇다. 관습의 굴레를 덧씌운 모성애는 어떤 고행도 참아내는 인내로 자랐다. 그 결과 <엄니>는 참으로 숭고하면서도 저린 이름이 되었다. <엄니>(권비영/가쎄)에는 지난한 세월을 살아온 우리네 어머니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익숙한 이야기들이라 굳이 톺아가며 읽을 필요는 없다. 어렵지 않지만 편하게 읽기에는 마음이 무거운 것도 사실이다. 어떤 등장인물도 과거의 어머니들은 자유의지대로 살아낸 사람이 없어서다. 강요된 부덕을 수용하고, 자식과 가정에 잡힌 발목을 빼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여인들. 자신들의 결혼생활이 만족스러운 인물은 하나도 없다. 그러면서도 비혼(非婚) 선언하는 딸을 이해하지 못한다.

<엄니>는 찢어지는 가난 때문에 일곱 살에 건어물 가게로 팔려간 장길주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일자무식인 자신에 비해 며느리는 최고학력의 영어교사다. 내리 딸만 다섯을 낳은 끝에 시앗을 들이고서야 낳은 아들 황구남은 정작 딸만 셋 낳고 단산을 했다. 장길주는 그런 며느리와 아들이 못마땅하다. 손녀는 한 술 더 뜬다. 큰손녀만 결혼을 했을 뿐 나머지 손녀 둘은 도무지 결혼에는 관심도 없다. 게다가 듣도 보도 못한 해혼(解婚) 선언으로 아들과 며느리가 별거에 돌입하자 팔순에 접어든 장길주는 공허감에 가슴이 시리다.

관습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과거 여인들의 이야기는 흔하다. 유교사상을 바탕에 둔 혼인관계에서 모든 여인들은 종속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딸이며 손녀의 비혼선언에는 소스라친다. 관습의 과도기를 건너는 여인들로서는 이율배반적 명제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들의 결혼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하면서도 결혼을 부정하는 딸들이 불안한 어머니들. 그렇더라도 비혼은 독신가정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가정을 양산하는 추세다. 엄니들의 삶을 답습하기 싫은 딸들에게서 비롯된 비혼은 남성들에게도 새로운 풍조가 되고 있다. 때문에 이 책의 주제는 다소 구태의연하다. 다만 우리네 어머니들의 신산한 삶에 경의를 표하는 맘으로 접한다면 식상하다는 느낌을 공감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장세련 아동문학가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