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도시에서 책읽는 울산으로 - (3)‘책읽는 일본’을 만드는 사람들

도서관과 서점은 ‘책 읽는 도시’를 구성하는 중요한 뿌리다. ‘책 읽는 울산’ 취재차 방문했던 일본의 사가현 다케오시립도서관, 가나자와현 우미미라이도서관, 후쿠이현립도서관, 그리고 후쿠오카 북스큐브릭서점, 교토 세이코샤서점, 교토 게이분샤서점 등은 ‘책 읽는 일본’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특히 그곳의 관장과 대표들은 매우 인상적인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우선 도시의 특징과 수요자의 욕구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었다.

누가 어떤 질문을 해도 완벽한 답변을 내놓을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는 전문가였다. 특히 도서관장은 울산과 마찬가지로 순환보직 공무원임에도 어느 직원의 도움도 없이 도서관 설립 배경에서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빈틈없이 설명하고는 도서관 구석구석을 소개하는 일까지 직접 했다.

관장에, 과장에, 계장에, 담당자까지 줄줄이 배석하고도 답변을 못해 또다른 담당자를 부르곤 하는 우리 공직사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 놀라웠다.

그들 중 다케오시립도서관 미조카미마사카쓰(溝上正勝) 관장과 북스큐브릭의 오이미노루(大井實)대표, 세이코샤의 호리베아쓰시(堀部篤史)대표의 책·독서와 관련한 독특한 철학을 소개한다. 정명숙기자 ulsan1@ksilbo.co.kr

▲ 미조카미마사카쓰(溝上正勝) 다케오시립도서관장

“목적 관계없이 도서관 오면 책 읽어

라이프스타일 제안하는 곳 되어야”

◇미조카미마사카쓰(溝上正勝) 다케오시립도서관장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 오면 기분 좋은 도서관, 이게 가장 중요한 두가지 핵심입니다.”

공직자로서 도서관 리모델링에 참여했다가 은퇴 후 CCC(Culture Convinience Club) 소속으로 다케오시립도서관장이 된 미조카미마사카쓰(溝上正勝)씨. 그는 어떤 목적이든 도서관에 오게 되면 그게 곧 책읽기의 시작이 된다고 생각한다.

사가현의 작은 도시인 다케오시(인구 5만명)에 자리한 다케오시립도서관은 개관 6년만에 연간 100만명이 찾는 도서관으로 성장했다. 벤치마킹하러 오는 사람만 연간 200여명이고, 그 중 50여명이 한국사람이라고 한다. 담당자가 아니라 시장, 구청장들이 여러 직원을 거느리고 방문하는 것이 놀랍다고 했다.

미조카미 관장의 목표는 “도서관에 가본 적도 없고, 가고 싶어하지도 않는 사람들을 도서관에 오게 만드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도서관은 특별한 마음가짐으로 오는 곳이 아니다. 다케오시립도서관이 이용자의 눈높이에 맞춘, 셀수 없이 많은 독특한 변화를 끊이지 않고 시도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다케오시립도서관은 일본 최대 서점인 츠타야를 경영하는 CCC에 운영을 위탁하면서 서점과 도서관, 커피숍(스타벅스)을 한 공간에 집어넣은 일본내 첫번째 공립도서관이라는 사실은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책 읽어주기 등은 물론이고 책과 관련 없는 도예, 전통악기, 헤어컷, 요리, 벼룩시장, 일루미네이션 등 시간별로, 계절별로, 연령대별로 누구든 한가지 프로그램은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각오로 1500여가지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년 내내 휴관없이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12시간 문을 연다.

“도서관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곳입니다. 휴관이 없는 도서관을 운영하다보니 적자를 면치 못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고 그들이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도서관의 적자는 다케오시가 지원하고 있다. 스타벅스가 이익을 내는 대신 도서관에는 이용자만 많이 들어오게 해달라는 것이다. 시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공간이 바로 도서관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 ◇오이미노루(大井實) 북스큐브릭 대표

“어른들이 새친구 만드는 커뮤니티로

동네서점, 지방소멸시대 대안될 것”

◇오이미노루(大井實) 북스큐브릭 대표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와서 모르는 옆사람과도 부담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우리는 학교와 회사를 떠나면 좋은 친구를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카페를 겸한 동네서점이 바로 어른들이 새로운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커뮤니티가 되는 거죠.”

후쿠오카의 한 작은동네에서 북스큐브릭을 운영하는 오이미노루(大井實) 대표는 동네서점이 지역공동체문화의 허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옛날 일본 곳곳에 자리했던 킷사텐(喫茶店)이라는 작은 찻집이 없어지고 스타벅스 등 대형 커피숍이 많아지면서 차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가 사라졌다가 다시 10여년전부터 카페를 겸한 작은 서점들이 생겨나면서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18년째 책과 관련된 일을 해온 그는 후쿠오카시의 중앙구와 동구 2곳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2층으로 구성된 그의 서점은 1층에서는 책·소품·빵을 판매하고, 커피와 간단한 음식을 판매하는 2층에서는 수시로 독서이벤트를 마련한다.

“일본도 1990년부터 책 판매율이 뚝 떨어졌습니다. 서점이 사양산업이지만 없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카페를 겸한 것은 나름 자구책인 거죠. 최근에는 같은 생각을 가진 젊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14년째 후쿠오카북페스티벌의 기획자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지방소멸시대’에 동네서점이 그 대안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 빈집을 활용한 서점 만들기 등을 해볼 생각이다.

2006년부터 매년 열리는 후쿠오카북페스티벌은 서점 운영자들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지자체와 일반 기업의 후원 없이 만들어가는 행사로 매년 1만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중고책 판매, 문고판페어, 토크쇼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추천 이유를 적은 띠를 두른 책을 판매하는 행사도 있는데, 11월3일부터 시작되는 올해 행사는 이 분야에 고등학생들도 참여시킬 계획이다.

“축구협회가 어린 축구선수를 키우듯이 책을 좋아하는 학생들도 키워야 합니다. 북페스티벌 참여를 통해 학생들을 이 분야에 데뷔를 시키는 것이죠.”

▲ ◇호리베아쓰시(堀部篤史) 세이코샤(誠光社) 대표

“관광지처럼 아무나 오는 서점 아닌

생각과 담론 나누는 공간 만들고파”

◇호리베아쓰시(堀部篤史) 세이코샤(誠光社) 대표

“아무나 오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일부러 번화가가 아닌 뒷골목을 선택해 서점을 열었습니다.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과 책을 통해 교감하고 싶습니다.”

교토시에 자리한 작은 서점 세이코사의 대표 호리베아쓰시(堀部篤史)씨는 동네서점이 살아남으려면 최소 비용으로 운영하는 작은 가게가 답이라고 말했다. 대학 강의를 나가는 목요일에만 아르바이트생을 쓸 뿐 그는 오로지 혼자서 서점을 운영한다.

이 작은 서점으로 그를 찾아간 이유는 그가 바로 영국 가디언이 세계 10대 서점의 하나로 선정한 게이분샤 이치조지점의 점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게이분샤가 세계적 명성을 얻자 오히려 게이분샤를 과감히 그만두고 4년전 그보다 10분의 1에 불과한 세이코샤를 연 것이다.

“서점에 소품 등을 들여놓으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내게 되자 게이분샤가 점점 커졌습니다. 덩달아 종업원이 많아졌고 운영비를 벌기 위해 가방과 소품 등의 판매를 더 늘리게 됐죠. 그러다보니 관광지가 되어갔고 어느날 문득 제가 원하는 서점과는 많이 달려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의 새로운 서점 세이코샤에도 손님이 많고 매출도 만족할만큼 올리고 있다. 성공 비결은 바로 20여년 서점 운영 노하우로 어떤 책을 들여놓아야 하는지, 어느 정도 규모가 적당한지를 가늠하고 그것을 지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객 1만명선이 그가 말하는 세이코샤의 규모다.

우리나라에도 번역 출판돼 있는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의 저자이기도 한 그를 찾아오는 관광객들 덕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들은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들일 뿐, 매출에는 도움이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의 서점엔 베스트셀러나 실용서 보다는 문화와 기호에 관련된 책이 많다. 서점 바로 옆에는 핸드드립 커피를 파는 카페가 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개성 있는 작은 가게를 열고, 그 가게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담론을 나누는 거리를 만드는,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에 대한 그의 실험이 이곳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정명숙기자 ulsan1@ksilbo.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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