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농촌은 농민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한-칠레 FTA 국회 비준안을 제출했으나 비준 반대에 서명한 국회의원이 144명에 이르고 농림해양수산위에 제출된 FTA특별법(자유무역협정체결에따른농어업인등의지원에관한특별법안)은 위원들의 반대로 상정조차 되지않고 있다.

 한-칠레 FTA 체결에 따른 대책 수립이 충분한 상태라면 국회는 신속한 비준안 처리로 행정부를 뒷받침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FTA의 일반적 당위성을 이해하면서도 농민들의 주장에 일정부분 공감하게 되는 것은, 칠레와의 FTA 체결내용이 과연 최선이었는가, 그리고 후속대책은 충분한가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4년 최종 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에서 농업의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아 관세인하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지위를 인정받아왔다. 그런데 한-칠레 FTA를 통해 우리 농업을 개방한다면 어렵게 얻어낸 "유리한 지위"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며, WTO협상에서 우리가 강조해온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되고 만다는 주장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이 때문에 농민들은 앞으로 있을 WTO 도하개발의제(DDA) 농업협상 결과와 연계하여 농업시장 개방이 이루어져야 하며, 한-칠레 FTA가 이대로 체결되어 농업시장이 개방된다면 미국을 비롯한 농산물 수출강국들의 동등한 대우 요구 등 WTO회원국들의 수입개방압력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자국 농업에 대해서 막대한 보호장벽을 갖춰 놓고서 개발도상국들에 대해선 농업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 콜럼비아대 교수는 유럽이 젖소 1마리당 지급하는 보조금은 평균 2달러로 전세계 수십억명의 빈곤층이 하루 생존하는데 드는 액수와 같고, 미국이 자국 2만5천명의 농민에게 지급하는 40억달러 목화보조금은 아프리카 농민 1천만명에게 불행을 선사하는 것으로 미국이 관련국가에 지급하는 원조금을 훨씬 넘는다고 비판한 바 있다.

 굳이 이번 한-칠레 FTA 체결 문제뿐만 아니라, 농업시장 개방에 따라 예상되는 농가 피해 대책을 사전에 마련해 놓았어야만 했다.

 농민들은 지난 2000년 상반기 미국산 오렌지의 급격한 수입증가의 대체효과로 과채류 전 품목에 걸친 가격폭락 경험을 잊지 못하고 있다. 당시 오렌지 수입물량이 1~5월 사이에 전년 대비 4.4배인 7만4천396t이 수입되면서 국내 대부분의 과수 가격이 폭락해 그 하락폭이 감귤 57%, 배 64%, 참외 40%, 토마토 52%에 달했다. 과일류 전체로는 40% 하락해 농가경제가 파탄에 직면하기도 했다.

 국회비준을 앞두고 FTA특별법 마련 등 노력하고 있지만, 농민들의 걱정을 해소하는데는 미흡하다. 과거 UR 이후 제정된 "WTO 협정이행특별법"과 관련, 소관 부처별로 관련사항 시행규정을 마련하여 제도적 조치를 다했다는 정부에 대해 농민들은 관련 시행령이 뒤따르지 않아 사문화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칠레 FTA가 이번 국회회기 중 비준되지 않는다면 국가 신뢰도의 추락이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비준안 부결이 장기적으로 국가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국회가 문제점을 타당성 있게 제기, 행정부에 대한 견제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 국가 신뢰도를 상승시키는 길이라는 지적이다.

 나는 한-칠레 FTA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이미 지난해부터 언론을 통해 밝혀왔다. 무엇보다 앞으로 있을 세계무역기구 DDA 농업협상에서 우리나라가 계속 "개도국 혜택"을 유지할 수 있도록 모든 부문의 외교역량을 집중해야만 한다. 이와는 별도로 농업에 대한 중장기적 지원방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시급하다. 이것이야말로 FTA 비준 처리를 빨리 끝내는 첩경이다.

 행정부와 국회가 함께 의논하여 농어촌 발전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공동으로 책임지는 진실성이 담보되어야만 농민들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요약분이며, 전문은 정 의원 홈페이지에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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