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시험으로 평가받느라 지쳐
자칫 공부의 본질을 놓칠까 걱정
세상이치 깨치는 건 평생의 즐거움

▲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아들아, 며칠 전 네가 기말고사를 앞두고 이렇게 말했지. “아빠 난 이번에 열심히 해서 반드시, 무조건 백점 맞을 거야.” 예전 같으면 ‘그래, 노력하면 안되는 게 없단다.’하고 말했겠지만 이번엔 이렇게 답했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반드시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건 아니란다. 그간 아빠가 성취하고 뿌듯해 하던 작은 목표들도 지금 돌이켜보니 모두 운이 도와준 덕분인 것 같다. 눈앞의 목표를 이루면 감사하고, 안 되면 다음 목표를 향해 노력하면 되지. 세상에 확실하고 보장되는 것은 별로 없더구나. 그래도 이 세상에 ‘무조건’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곳이 한 군데 있단다. 엄마 아빠는 너를 무조건 사랑한단다.”

너의 공부 의욕을 꺾을 생각은 없단다. 한 때 아빠도 너와 비슷한 마음이었지.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말이 멋져 보였고, 언제나 나를 절박한 상황에 몰아넣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지. 한 때 경쟁에 도움도 되었단다. 그런데 크고 작은 목표가 끊이지 않더구나. 매번 전력질주 하다 보니 눈앞의 목표가 대단해 보이고, 잘 되면 우쭐, 안 되면 낙담하게 되더라. 시야는 좁아져서 연이은 목표만 긴 터널 속에 보이고, 답답한 마음에 터널 밖으로 나와서 멀리 내다보니 앞길에만 차가 꽉 밀려 있더구나. 옆길은 뻥 뚫렸고 쉴 곳도 많던데. 지금도 여전히 앞길로 가고 있지만 방금 본 전망을 떠올리면 마음이 훨씬 편해진단다.

물론 학생 시절 공부에 흠뻑 빠지는 것은 평생 훌륭한 자산으로 남는단다. 젊은 시절 차곡차곡 쌓인 지식과 몸에 배인 자기주도 학습이 앞으로 네가 삶과 자연의 비밀을 깨닫게 도와서 얼마나 큰 즐거움을 선사할지 상상이 되니?

이렇게 공부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어른들 자신은 어떻게 공부하는지 궁금하지. 아빠만 해도 지쳐서 퇴근하면 멍하니 뉴스만 보다가 잠들곤 하지. 요즘 공부하는 어른은 많지 않단다. 핑계 대자면 일하느라 바쁘고, 그러다가 짬이 나면 휴대폰으로 가벼운 오락을 하지. 2017년에는 성인 중 40%가 1년간 책을 한 권도 안 읽었다는구나.

그래도 지적 갈증 때문에 강연에 대한 관심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구청이나 시청에서 명사 초청 강연 행사를 하지. 강연을 들으면 뭔가 얻은 것 같은데 깊이 들어가긴 어렵지. 강연이 독서의 계기가 될 순 있어도 독서를 대신할 순 없단다. 문제는 공부에서 멀어진 어른들의 관심을 끌기가 쉽지 않다는 것. 학교 선생님도 재미있는 이야기로 학생들의 잠을 깨워가며 강의하지 않니. 물론 일부 학생들은 농담 시간만 지나면 곧 잠들지만. 어른들도 마찬가지란다. 그래서 교육과 오락을 섞은 에듀테인먼트가 유행이지. 최근엔 유명 연예인이 고액 강연료를 받고 여러 지자체에서 강연을 한 것이 알려졌지. 유명 연예인의 오락성 높은 비싼 강연을 굳이 보고 싶다면 그 비용을 참석자가 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이렇게 재미있는 강연은 아니지만 어른들은 직종에 따라서 매년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강연도 있단다. 인권교육이나 성희롱 예방교육은 기존의 잘못된 관행을 바꾸는 데 기여도 했지만, ‘현대 사회의 변화하는 문화와 도덕적 사안에 대해 국가가 나서서 세세한 기준을 만들어도 되나’하는 생각도 들어. 이 달 16일에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자 예방교육 의무화 법안도 발의되었어. 사회생활의 복잡 미묘한 문제를 매번 일률적 교육과 처벌 압력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늘고 있어.

이젠 교육과 공부의 의미도 변질되는 것 같다. 학교 시절 점수에 얽매여 악착같이 공부하다가, 이후엔 직업 분야 외에는 가볍고 수동적인 공부를 하지. 아들아, 공부에 바쁜 네게 굳이 이런 현실을 말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장시간 공부하고 잦은 시험으로 평가받는 지금 자칫 공부에 흥미를 잃을까 걱정도 되는구나. 힘들더라도 공부의 본질을 놓치지 말고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는 즐거움을 평생 누리길 바란다.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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