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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경상시론
[경상시론]유연성이 떨어지면 나타나는 것들윤창호법·노동시장·외교관계 등
특정이념과 충동적 여론 얽매여
유연성 잃어가는 대한민국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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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21  22: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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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하 내과의원장

60대 초반의 남성 환자가 약 2년 만에 병원에 와서는 속이 쓰리다면서 위장약 처방을 요구하였다. 오랜만에 방문했기에 속이 어떻게 아픈지 먼저 묻고 진찰을 하였다. 그는 이전과 달리 얼굴 표정이 굳어있었고, 몸이 뻣뻣하고 유연성이 떨어져 있었다. 직감적으로 어떤 좋지 않은 변화가 발생했다고 생각했고, 위장 이외에 불편한 점이 없는지 물었더니 걷는 것이 부자유스러워졌다고 했다. 나는 환자가 신경과 진료를 볼 수 있도록 근처 병원을 소개했고, 만성병인 파킨슨병으로 진단받았다.

우리 사회에도 사람에게서와 비슷한 표정 같은 것이 있다. 그걸 사회 분위기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사회 분위기가 뻣뻣하게 굳어지고 유연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를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최근 더욱 심해지는 것 같아서 걱정하는 마음으로 본고를 쓴다.

이런 사례로 우선 들고 싶은 것이 소위 ‘윤창호법’의 시행에 관한 것이다. 필자는 음주운전으로 인한 상해에 대해 중형으로 처벌하는 것에는 동의하나, 반대 입장을 내는 부분은 단속기준을 혈중 알코올농도 0.05% 이상에서 0.03% 이상으로 낮춘 것이다. 지난 설 연휴 교통경찰관이 TV에 출연해 이런 인터뷰를 하였다. “처벌이 강화된 윤창호법 시행 이후 첫 번째로 맞는 설 명절입니다. 차례를 지낸 후에 음복으로 술을 한 잔씩 하시는 경우가 있을 텐데 이 경우에도 음주 단속이 될 수 있는 만큼 이 점 유의하셔서…” 이런 뉴스를 접하면 참 씁쓸해진다. 음복 전통을 버리라는 것인지? 아니면 전통을 지키면서 설날에 대리운전이라도 하란 말인지?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려고 음복 전통도, 회식 때 “브라보”라고 외치며 마시는 건배주 한 잔도, 저녁식사와 같이 하는 와인 한 잔마저도 허용되지 않는 삭막하고 재미없는 사회가 되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힘든 하루를 마친 뒤 저녁 늦게 소주 한 두 병 마시면서 애환을 달래고 다음날 아침 일찍 작업용 차를 몰고 일터로 가는 서민도 많다. 이 정도로 마신 술은 자고나면 운전하는데 별 영향이 없지만 알코올 농도는 남아있어 잠재적 범죄자로 내몰리고 있다. 필자가 주위에서 만나 의견을 나누어 본 사람 중 대부분은 시급하게 법을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올 초 경상일보를 통해 ‘윤창호법’에 대해 처벌과 단속의 효과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의 우려가 담긴 글을 읽고 필자는 100% 공감을 하였다. 필자가 조사해본 바로는 대부분의 유럽 주요 선진국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은 단속 기준이 0.05%이고, 영국과 미국은 0.08%를 유지하고 있다. 충분히 시간을 두고 국민의 합의를 끌어낸 후에라도 늦지 않을 법제화가 너무 급속히 이루어졌다는 것은 이 사회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최근 울산과 미국에 2개의 공장을 두고 있는 중견기업의 CEO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거래처 대기업이 어려워져 미국 직원은 3분의 1 이상 줄였는데, 울산 직원들은 한 명도 줄이지 못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제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아주 중요할 것이다. 여러 종류의 고용이 생기고 다양해지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고 4차 산업시대에 맞는 형태일 것이다.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적으로 전환하고 오후 6시면 사무실 컴퓨터를 꺼버리려고 한다면 우리는 무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모든 것에 앞서 철저히 국익을 생각하고 결정해야 하는 것이 총성 없는 전쟁터인 국제외교의 기본이다. 정의감과 국민감정을 앞세운 뻣뻣한 외교관계는 기업과 국가를 어렵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우리 외교는 얼마만큼의 유연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기술의 발전은 갈수록 빨라지고 미래는 더더욱 예측하기 어려워져 가는 지식정보화시대, 융합의 시대라고들 한다. 국가나 사회의 리더뿐만 아니라 개개인에게 꼭 필요한 덕목의 하나가 유연성이고, 이것을 잃어버린 사회는 경쟁에서 낙오되고 병들어갈 것이다.

특정 이념이나 일시적이고 충동적 여론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성을 회복하라는 것이 우리 사회의, 그리고 이 시대의 요구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라고 여겨진다.

김도하 내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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