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영민 울산 울주군 범서읍 장검길

얼마 전 태화강 ‘십리대숲’을 ‘백리대숲’으로 확장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강 전역이 대나무로 뒤덮여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백 리나 되는 긴 거리를 대나무로 가득 채운다니. 이는 푸른 숲의 향연이라기보다는 넓고 긴 도로 가득 늘어선 군인들을 연상시킨다.

태화강에는 십리대숲 외에도 선바위, 억새밭 등 고유의 특성을 가진 장소들이 있다. 강의 일부인 십리대숲을 전체로 확장하는 것은 자칫 그 특성을 훼손시킬 수 있다.

현재 태화강의 문제는 강과 사람들 사이의 접점에 있어 예전보다 강도는 약해지고 범위는 좁아졌다는 것이다. 산업화 이전에 강은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다. 아낙들에게는 빨래터가, 물놀이를 하고픈 사람들에게는 수영장이 되어주었다. 농부들에게는 저수지이고, 어부들에게는 어장이었다. 물건이나 사람을 실어 나르는 물길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생활의 강’이었던 태화강은 울산에 공장이 들어서고 수질이 나빠지면서 점차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다행히 2000년대 들어와 많은 이들의 노력 끝에 수질이 회복되면서 강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십리대숲’은 그 중 하나로 단연 백미다. 하지만 이를 ‘백리’로 확장한다고 해서 대표적 관광명소가 될 지, 시민 모두가 좋아할 지는 의문이다. 울산시민들은 ‘울산시민’이란 하나의 단어로 지칭되지만, 다양한 관심사와 취미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이 태화강에서 경험하고 싶은 것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의 해답은 하나의 영화시리즈에서 찾을 수 있다. MCU, 소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고 불리는 이 영화시리즈는 디즈니 산하의 회사인 마블엔터테인먼트가 그들의 캐릭터로 만든 영화들을 하나로 묶어 칭하는 말이다. 이 영화시리즈는 2008년 ‘아이언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최근엔 22번째 영화 ‘어벤져스 : 엔드게임’을 통해 초기에 소개된 6명의 캐릭터를 퇴장시키며 지난 11년간의 이야기들을 정리했다. MCU가 오랫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지속해서 끌어낼 수 있었던 것에는 다음의 몇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첫 번째, 다양한 중심소재 ‘캐릭터’다. 마블엔터테인먼트는 ‘아이언맨’ ‘퍼스트 어벤져’ 등을 통해 서로 다른 특성과 개성을 지닌 캐릭터들을 점진적으로 소개했다. 현재까지 등장 캐릭터만도 20여 명에 이른다. 태화강의 한 부분인 ‘십리대숲’이란 중심소재를 단순히 강 전체로 확장만 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소재를 발굴 혹은 개발해야 하는 이유이다.

두 번째, 다양한 중심소재를 활용한 각기 다른 경험이다. 마블엔터테인먼트는 SF, 전쟁, 판타지 등 그들이 가진 캐릭터에 걸맞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제작했다. 그 때문에 관객들은 영화를 볼 때마다 조금씩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많은 시민들이 찾는 태화강이 되려면 다양하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세 번째, 각기 다른 영화들을 모아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로 묶어낸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이 마블엔터테인먼트는 각각의 영화 속 중심소재들을 연계하여 MCU라는 하나의 커다란 틀로 엮어내었다. 특히 ‘어벤져스’ 시리즈는 개별영화의 캐릭터들을 한 영화에 등장시켰다. ‘어벤져스’는 구성원 각자의 개성을 살려 시너지를 일으키는 단체다. 반면 ‘군대’는 구성원의 개성을 누르고 하나의 색깔로 통일시킨 단체다.

울산시는 태화강을 ‘어벤져스’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군대’로 만들 것인가? 태화강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서로 연계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태화강 개발은 조급하게 진행할 사업이 아니다. 마블엔터테인먼트는 5년 동안 6개의 영화를 통해 시리즈의 기반을 다졌다. 많은 회사가 그 성공의 실적만 보고 성급하게 추진하다가 대부분 실패했다. 급하게 일을 추진하면 어딘가에서 문제가 드러나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태화강의 특색을 훼손하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되살리려면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고영민 울산 울주군 범서읍 장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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