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해도시였던 울산에 가꾼 국가정원
그 역사성이 태화강의 탁월한 가치다
산업박물관으로 보편적 가치 완성을

▲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다시 꿈을 꾼다. 태화강이 국가정원으로 지정됐다. 산업과 문화가 공존하는 ‘산업문화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다만 태화강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Outstanding Universal Value)인 ‘산업과 문화의 공존’을 어떻게 태화강에 담아내느냐가 문제다. OUV는 세계문화유산의 선정기준이기도 하지만 관광산업 활성화에 있어서도 반드시 필요한 관문이다. 지역주민들에게 자긍심과 정주의식을 높여주는 중요한 가치이기도 하다.

월드컵 경기를 앞둔 2002년의 일이다. 울산을 대표하는 문화행사 발굴이 시급한 과제가 됐다. 문화행사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문화행사의 주제 공모도 했다. 그 때 선정된 주제는 필자가 제안한 ‘울산의 불꽃, 세계의 빛’이다. ‘불꽃’과 ‘빛’은 산업도시 울산의 긴 역사를 담아낸, 산업의 문화적 해석에서 나온 단어다.

17년이나 지난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 내는 이유는 태화강 국가정원 지정과 더불어 울산의 OUV인 산업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가 경탄하는 ‘한강의 기적’은 곧 ‘태화강의 기적’이다. 울산의 젖줄이던 태화강을 ‘죽음의 강’으로 만들어서 얻어낸 결과다. 당시만 해도 ‘산업의 강’은 당연히 ‘죽음의 강’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경제수준과 의식이 높아지면서 산업을 일으켰던 불굴의 의지는 ‘죽음의 강’을 ‘생명의 강’으로 돌려놓았다. 마침내 태화강이 우리나라 두번째 국가정원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사람이 살 수있는 곳이냐’는 질문이 끊이지 않았던 공해도시 울산 한복판에 국가정원이라니. 그 역사성을 담아내지 못하면 태화강의 탁월한 가치는 없다. 단지 도심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하천이라는 보편성만으로는 수없이 많은 다른 도시의 강들과 차별화하기 어렵다. 산업이 태화강의 OUV인 것이다. 우리는 산업을 일구고 생명을 회복한, 두번에 걸친 ‘태화강의 기적’을 반드시 국가정원에 담아내야만 한다.

산업과 문화는 공존할 수 없는 개념이 아니다. 울산은 이미 산업을 문화로 승화하고 있다. 북구에서는 울산이 삼한시대부터 공업도시였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쇠부리축제가 매년 열린다. 울주군은 광복 후 주요한 생활산업이었던 옹기생산을 옹기축제로 펼쳐내고 있다. ‘쇠와 불’ ‘흙과 불’이 어우러져 산업이 된 것을 문화로 재해석한 것이다. 자동차·조선·석유화학 등 3대 주력산업의 날도 지정해 다양한 문화행사를 펼친다. 자동차·조선(동구 조선해양축제)은 불꽃으로 상징되는 용접의 산물이다. 석유화학공장의 굴뚝에서도 불꽃이 치솟는다. 선암호수공원에서는 해마다 ‘불꽃쇼’(남구 선암호수불꽃쇼)가 펼쳐진다. 다만 주체가 제각각이라 의미를 재해석하지도, 규모의 문화산업으로 발전시키지도 못했을 뿐이다.

쇠부리축제와 옹기축제는 특성을 강화하고, 조선해양축제를 되살리고, 자동차축제를 활성화하고, 석유화학축제를 새로 만들면 울산의 산업은 곧 거대한 문화가 된다. 송철호 시장이 말하는 ‘빅텐트(big tent)’도 간절히 필요하다. 산업과 문화를 아우르는 ‘빅텐트’는 뭘까. 바로 산업의 문화적 해석의 결정판인 산업기술박물관이다. 국책사업으로 추진하다 유야무야된 산업기술박물관을 태화강 국가정원이 바라다 보이는 강변 어디 쯤에, 세느강변의 루브르박물관처럼, 템즈강변의 테이트모던처럼, 아름다운 건축물로 되살려야 한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10위 경제대국을 거듭난 역사를 담아내고 첨단미래산업을 제시하는 산업기술박물관이 있어야 비로소 태화강 국가정원의 OUV가 완성될 뿐 아니라 3번째 ‘태화강의 기적’이 찾아올 것이다.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ulsan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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