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누구나 참여하는 대화장 마련
경청하고 해결방안 찾길 바라

▲ 김성열 울산과학대 교수 컴퓨터정보학부

최근 어느 세미나에 참가했더니 옆에 있는 사람들과 팀을 짓게 하고 ‘아무 말 대잔치’라는 아이스브레이킹(Ice Breaking·어색함을 털고 마음을 열어 관계를 만들어 가는 상호이해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시작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떠오른 ‘아무 말’이나 이야기한다. “나는 오늘 아침에 떡국을 먹었습니다” 라고 하면 다음 사람들도 오늘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돌아가며 말한다. 한 바퀴를 돌아서 다음 시작하는 사람은 다른 ‘아무 말’이나 한다. “요즘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있어요” 그러면서 참가자들은 어색함을 털어내고 하나의 팀이 되어 갔다.

어디에선가부터 시작되어, ‘묘한 중독성’을 만들어내며 국민들에게 많은 웃음을 준 ‘아무 말 대잔치’라는 개그프로그램도 있었다. 하지만 본래 ‘아무 말’이라는 단어는 그다지 좋거나 밝은 분위기에서 쓰여 지지는 않는다. 뭔가가 잘 안 풀리고 진행이 되지 않을 때, 뭔가 잘못된 상황을 극복하고 싶은 데 방법이 잘 안 떠오를 때 등 답답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아무 말이나 좀 해보세요’라는 형태로 쓰여 진다. 이 때 진짜 아무 말이나 했다가는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어떤 아무 말은 상황을 개선시키고 해결책을 제공하기도 한다.

1990년 초, 동기생들보다 늦은 군 생활을 시작했다. 휴가를 받아 출발하면 다음 날 집에 도착했던 때니 조금은 오래 전 일이다. 아침 찻길에, 뱃길에 얹혀 정말 까맣게 어두워진 날 도착한 곳은 을지부대였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로 유명하고, 기억에 의하면 ‘대한민국 최고의 산악사단’이란 수식어를 달고 있는 자부심 강한 부대였다. 부대마다 다른 경례를 배우는 것은 신병교육의 기본이었다.

그 때 당시 을지부대는 ‘단·결, 찾고 잡자’에 맞춰 한 번의 손동작이 이루어졌다. 그 직후 선임자가 ‘○○○님을 위하여’라고 하면 오른팔을 90도 위로 든 상태에서 하늘로 두 번 뻗쳐 올리고, 세 번째는 하늘로 솟구쳐 오르듯이 찌르며, ‘충성·충성·싸우자!!!’를 외치는 것으로 경례는 마무리 된다. 집총한 상태에서도 이 경례를 완벽하게 해 내었다. 이 경례는 을지부대의 또 하나의 자부심이었다.

‘민정경찰’ 라벨을 달고 GOP(General Outpost)에 근무하게 되었다. 그 것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었는데, DMZ(Demilitarized Zone)의 출입로인 통문소대-분대 규모보다는 조금 많은 인원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에 배치되었다. DMZ작전이 있으면 통문 소대원들은 초소 배치 경계 병력을 제외하고는 초소 주변에 대기하게 된다.

그날도 그런 시간이었다. 햇볕 따스하고 평화로운 580고지에 통문장교(통문소대장-대대교육장교), 소초장(소대장)등 대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통문장과 소대장은 병사들(분대장 포함)의 개인사부터 자신의 궁금증에 대한 답변들을 들어가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김 이병의 차례가 되었다. ‘○○○님을 위하여’에 대하여 진짜 뭔가 모를 애매한 부분에 대하여 이야기하게 되었다.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위하여 인거 아닌가, 교과서적으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아닌가, 그런데 구호가 ‘중대장님, 연대장님, 사단장님을 위하여’ 라고 되는 부분이…” 이런 이야기였다.

장교들은 진중하게 경청하고 있었으나 평상시 사람 좋은 한 명의 분대장에게 정말 많이 공격당했다. 국가, 민족 등에 대한 충성심-그 때는 많이 중요한 덕목이었다-은 물론이고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사명감까지도 의심해 가며 얼굴을 붉혔다.

우리들의 아무 말이 아무 말이 아니기를 기대한다. 그 위치와 무관하게 리더들의 아무 말은 해결책이 되는 말이었으면 한다. 아무 말도 어쩔 때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를 아무 말로 덮어 버리는 사회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예측 불가한 일들이 우리를 덮쳐 오는 상황에서 아이스브레이킹의 ‘아무 말 대잔치’가 필요할 때인가 같다. 김성열 울산과학대 교수 컴퓨터정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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