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실용음악도

아버지의 용돈을 아들에게 나눠주듯
총량은 그대로인 채 분배 달리한다해서
전체 행복이 늘어난다고 볼 수는 없어

행복에도 총량의 법칙이 성립한다면
가족 모두 만족할만한 용돈을 갖기위해
더많이 일하고 노력해서 소득을 늘려야
소득증가 없이 저녁만 길면 괴로운 법

술 끊은 지 7개월이 넘었다. 젊었을 때 너무 많이 마셔댄 나머지 주량이 점점 줄더니 드디어 음주능력이 바닥을 치게 된 것이다. 세상에 ‘술에 장사(壯士) 없다’라는 말을 새삼스레 절감중이요, 파리 날리는 술집 앞을 지날 때면 미안함이 그득하다. 한편 나의 친구 한명은 술자리에서 평생 한잔가지고 홀짝 대더니, 지금은 소주, 고량주 닥치는 대로 마셔 재낀다. 부럽게도 그는 나이가 들수록 술이 는다. 그 친구 왈 ‘평생 음주량 보존의 법칙’이 있단다. 평생에 마시는 음주총량은 정해져 있다는 얘기다. 우스꽝스럽고 논리 없는 얘기지만 총량보존의 법칙에는 ‘평생 잠자는 시간’, ‘평생 숨 쉬는 횟수’도 있어 오래 살기위해 그 친구는 잠도 조금 자고, 숨도 일부러 천천히 쉰단다.

그런데 실제로 자연계에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 또는 열역학 제1법칙이란 엄청난 녀석이 존재한다.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법칙이다. 좋은 예로 높은 댐에 가두어진 물을 떨어뜨려 발전하는 경우를 상정하면 물의 위치에너지가 물의 낙하운동에너지로 바뀌었다가 다시 전기에너지로 에너지의 형태가 바뀔 뿐 그 에너지의 총량은 언제나 같다. 자동차에 휘발유를 넣고 이를 폭발·연소시켜 바퀴를 돌려 도로를 달리는 경우, 그 휘발유연소에너지는 바퀴와 노면사이의 마찰, 자동차에 작용하는 공기저항, 기타 부품간의 마찰 등에 의한 손실에너지의 합과 같다. 이 보존의 법칙은 사실상 자연계 뿐 아니라 일상의 많은 문제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어느 날 5만원 가진 아버지가 2000원 가진 아들에게 1000원을 주면 아버지 지갑은 4만9000원으로 줄어들고, 아들 지갑은 3000원으로 늘어나지만, 두 사람 지갑속의 총액은 5만2000원으로 그 총량은 보존된다. 소위 ‘돈 총량보존의 법칙’이다. 보존의 법칙이 성립하는 예(例)는 너무 많아 더 들 필요조차 없다. 그렇다면 이 법칙은 인간의 행복에도 적용될까? 행복의 총량도 보존될까? 과연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일까?

앞의 예를 더욱 세밀하게 들여다보자. 아버지의 경우 5만원에서 감소된 1000원은 별거 아니게 느껴지지만, 2000원에서 3000원으로 1000원 늘어난 아들은 엄청난 행복을 느끼게 된다. 이런 일이 열흘 간 반복적으로 생긴다고 가정해보자. 이제 아버지의 지갑엔 1만원이 줄어 4만원이 들어있고, 아들의 지갑은 1만1000원에서 다시 1000원 늘어 1만2000원이 되었다. 아들의 경우를 보자. 2000원에서 1000원 늘었던 첫날의 행복감과 1만1000원에서 1000원 늘어 1만2000원이 된 열흘째 되는 날 느낀 행복감은 과연 같을까? 같은 1000원 증가했지만 필시 아들의 행복감은 첫째 날에 비해 현저히 저하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아들의 행복감 저하상황을 경제학에서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 부른다.

한편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면 처음 1000원 감소했을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1만원 감소에 이르니 불안감 내지 불행감이 점점 커질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아버지의 늘어나는 불행감과 아들의 줄어드는 행복의 합(총량)은 언제나 보존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아들의 행복에 대해서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맞고, 전체적으로는 행복총량보존의 법칙도 맞다고 볼 수도 있다. 순전히 나의 생각이다.

이렇듯이 보존의 법칙과 감소의 법칙이 있으니 혹시 증가의 법칙은 없을까? 있다. 엔트로피(Entropy) 증가의 법칙, 또는 열역학 제2법칙이란 더욱 엄청난 녀석이 있다. 엔트로피는 무질서의 척도로서 우주는 무질서상태를 향해, 즉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자발적으로 가고 있다는 법칙이다. 물이 얼음이 되고, 식물의 광합성과정 등 자연계질서유지를 위한 에너지 역시 증가하지만, 이 과정에서 나오는 열이 다른 분자들의 자유로운 운동을 촉진함으로써 생기는 에너지에 턱없이 못 미쳐 우주 전체적으로는 점점 무질서해 간다는 내용이다.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프레더릭 소디(Frederick Soddy)는 이 법칙이 ‘모든 정치체제의 흥망성쇠, 국가의 자유와 속박, 산업동향, 가난과 부의 근본, 종족의 복지까지 관장한다’라고 갈파한 바 있다. 즉, 독재국가에서는 개인의 자유증가라는 자발적 엔트로피의 증가를 억제하고, 어떠한 명분으로 든 안정성 및 질서를 강제시하는 방향, 즉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반 우주적 과정을 추구한다. 반대로 제대로 된 자유민주국가라면 개인의 자유향상이라는 우주적 움직임과 에너지를 낮춰 질서를 추구하려는 정부의 개입이 조화를 이룬다.

앞의 예로 다시 돌아가 보자. 아들의 행복이 아버지의 불행을 초래하는, 소위 행복총량의 법칙이 성립된다면 가족 모두의 입장에서는 결코 행복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도 아들도 돈과 관련해 모두 행복해지는 소위 행복총량이 증가하려면 그 집의 총소득 증가가 유일한 해결책일 수밖에 없다. 소득이 증가하려면, 아버지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우주의 법칙에 따라 자유로이 생산 활동에 임할 수 있어야 함은 명백하다. 그리하여 아들 용돈도 올라가고, 비록 짧은 저녁이지만 가족 모두가 행복하게 되는 길인 것이다. 소득은 늘지 않고 저녁만 길면 더욱 괴로운 법이다.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실용음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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