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땐가 갑오년 가뭄과 계모년 보리흉년으로 3년 째 내리 한해를 입던 해에 바리부락의 한 총각이 하도 배가 고파서 웅촌으로 시집가 3년이나 소식이 없는 누님 집을 찾아갔다. 누님은 시집살이 3년만에 동생을 만나자 너무나도 반가워했다. 시가의 인심 또한 좋아 사돈총각에게 씨암탉을 잡아 보신시켰지만 그래도 누님은 양이 차지 않았다. 층층시하 눈치 보며 시집살이 3년 만에 만난 귀한 동생이라 있는 것 없는 것 다 해 먹였다. 사흘 만에 떠나게 된 바리총각은 그 동안 비어있던 뱃속에 닭을 잡아 보신하고, 떠나는 아침이라며 찰밥에 주개떡까지 먹고 또 찰떡까지 한 보따리를 들고 나서니 얼마나 배가 부른지 모를 지경이었다. 칠팔월 염천에 산등성이를 넘어 웅촌 들길을 지나 회야강 징검다리를 건널 때는 어찌나 배가 불러오던지 허리끈이 떨어져 나가버렸다. 이윽고 한 손에 보자기를 들고 다른 손으로 주우말(한복바지의 허리에 해당하는 부분)을 움켜쥐고 온양고개를 오르니 얼굴에는 땀이 비 오듯 흐르는데 배는 자꾸만 더 불러왔다. 마침 길옆을 보니 키만큼 자란 넉삼대(밧줄 등의 재료로 쓰이는 마)가 삼대처럼 서있었다. 그는 옳거니 하며 넉삼대 껍질을 벗겨 새끼처럼 꼬아 허리띠를 하고 떡 보자기를 등에 붙여 넉삼대 껍질로 질끈 동여매니 오르막 고갯길 오르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그러나 수월한 것도 잠깐, 넘떡바위까지 오르니 배가 엄청나게 불러왔다. 급기야 배가 불러 죽을 지경이 됐다. 주우말을 묶은 넉삼대 껍질 끈을 풀어보려고 했으나 아무리 애를 써도 끊어지지 않았다. 책칼이라도 있으면 그 질긴 넉삼대 허리끈을 잘라보련만 그 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그는 넘떡바위 위에서 속절없이 몸부림치면서 통한의 노래를 부른다.
"댐도 대다 온양고개/질고 길다 온양고개/우리 자형 인심 좋아/흔하더라 누부 밥아/질기더라 넉삼대야/아쉽더라 책칼이여/온양 웅촌 살기 좋다/배가 터져 내 죽는다"
그 뒤 얘기는 전하는 바가 없다. 하지만 노래의 문맥으로 보아 바리총각은 아마도 배가 터져 어이없게도 안타까운 생을 마감한 것 같다.
옛날 로마의 미식가들은 더 많은 맛있는 요리를 먹어보기 위해서 손가락을 목구멍에 집어넣어 토하고 또 먹고 하는 일을 되풀이 했다고 한다. 과연 바리총각은 그렇게 손쉬운 처방조차 생각지 못한 미련한 사람 이었을까. 행여 너무나 배고팠던 그 시절에 시집간 누님이 정성껏 먹여준 음식이라 차마 도로 내뱉을 수가 없었노라고 답한다면, 오늘의 우리는 바리총각에게 과연 무어라 말해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