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의 골깊은 노사 갈등만큼이나
최악의 불경기에 시민들의 시름도 깊어
울산의 위기극복에 노사민정 한뜻 돼야

▲ 신형욱 사회부장

울산의 노사현장의 갈등이 뜨겁다 못해 데일 정도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예상대로 파업 찬반투표를 가결시켰다. 올해 파업하면 8년 연속이다. 법인분할 등을 둘러싼 사측과의 갈등으로 파업을 반복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노조 역시 파업을 가결한 상태다. 특히 현대중 노사의 갈등은 치킨게임 양상으로 전개돼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다. 노조의 점거 농성과 과격 투쟁 등에 회사는 손해배상청구 소송과 고소·고발, 징계 등을 동원한 상태다. 노사간 기본적 신뢰마저 무너진 것 같아 보인다.

건설노조 울산건설기계지부 레미콘지회 조합원들도 운송비 인상 등을 요구하며 한달째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지역 레미콘사들은 경영환경 악화 등을 이유로 운송비 동결을 주장하면서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재계약을 하지 않고 있다. 울산플랜트건설 노사도 비슷한 상황이다.

산업현장의 깊어만 가는 갈등의 골만큼 역대급 최악의 불경기 속 힘겨워하고 있는 울산시민들의 주름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한집 걸러 빈 점포가 수두룩한 상황에서 무노동 무임금의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그나마 버티던 가게들도 줄줄이 문을 닫아야할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34개월째 이어지는 탈울산 행렬을 부채질할 지도 모를 일이다. 시민들은 ‘노조 탓’ ‘회사 탓’ 안주거리 놀음도 이젠 식상하다. 매년 반복되는 그들만의 파업 잔치에 가뜩이나 어려운 지역경제가 휘청대고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에 자괴감이 들 뿐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SK이노베이션의 노사협상 프레임 혁신이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초 상견례 직후 30분 만에 임금협상을 타결지은데 이어 최근에는 3주만에 단체협상을 완전 마무리했다. 임금협상의 틀을 물가지수 상승률에 연동하도록 바꾸면서 소모적인 논쟁을 줄인데 이어 단협도 노측이 먼저 필요한 사항을 제시하면 사측이 이를 협상하는 식으로 틀을 바꾸면서 혁신을 이끌어 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단협 프레임 혁신이라는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사상 최단기간에 의미있는 결과를 낸 것은 노사가 만들어 온 신뢰, 상생, 존중, 배려의 문화가 결실을 본 것”이라며 “이 노사 문화가 향후 100년, 200년 기업으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핵심 역량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사 노사협약에서 눈에 띄는 것은 ‘협력업체 공동 근로복지기금’ 조성 합의와 작업복 세탁서비스를 장애인 표준사업장과 연계해 장애인 고용을 확대하고 사회공헌활동에 적극적 참여키로 한 것이다. 사회조직으로서의 기업과 노조의 역할을 내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기존의 기업 노사협상 문화가 그들끼리의 밥그릇 싸움이 일반적이란 점에서 SK이노베이션 단협 프레임 혁신은 돋보인다. 물론 일부 기업 노사도 사회적 노조를 표방하고 있지만 일부 조합원이나 현장조직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울산은 산업도시이자 노동자 도시로 기업, 노조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노사민정이 함께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톱니바퀴를 굴리며 살아가야 하는 도시를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한때 노사 중재절차까지 밟으면서 협상 기간만 수개월째 걸리곤 했던 SK이노베이션의 프레임 혁신은 반갑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주요 수출국 성장둔화, 일본의 경제보복 등 대내외적 요인은 성장보다는 생존을 말해야 할 정도로 위중해 보인다. 몇년전부터 주력산업의 동반침체라는 그동안 걸어보지 못한 길을 걷고 있는 울산은 더욱 그렇다. ‘줄탁동기(알에서 깨기 위해 알 속의 새끼와 밖에 있는 어미가 함께 알껍데기를 쪼아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생존을 넘어 성장을 위해서는 노사의 프레임 혁신이 무엇보다 필요해 보인다. 울산 위기극복의 주체인 노사민정, 그중에서도 노사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다. 신형욱 사회부장 shin@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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