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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그림이 있는 에세이
[그림이 있는 에세이]호수산책- 배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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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01  21: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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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를 담은 호수와 키를 낮춘 숲이 조화롭다. 물은 지혜를, 숲은 평화를 가져다 준다. 호수를 품은 숲-이창락作

한적한 오후에 아내와 함께 ‘박상진 호수공원’ 둘레길 산책을 했다. 무룡산 줄기가 길게 뻗어내려 호수에 발을 담그고 있는 풍수가 신령하다. 산줄기는 빨대처럼 생명수를 끌어올려 초록빛 뭇 나무들 먹여 살리고 있으리라. 띠를 두른 호방한 호수둘레길 따라 산책을 한다. 명상에 잠겨있는 호수 풍경에 흥취된다. 날선 형상화 사유가 일어나는 호수는 만연체 수필이다.

독이 빠져 온순한 햇살에 빛나는 윤슬이 퍼포먼스를 하며 환희를 불러온다. 물빛에 취하고 물에 풍덩 빠진 산 그림자 최면술에 혼이 빠진 한량이 된다. 물은 건드리면 분노한다. 시퍼런 물이 일렁이면 오싹한 무섬증이 일어난다.

침묵하는 호수에 내 얼굴을 비추자 숭엄한 나르시스가 느껴진다. 세상 풍진은 죄다 내려놓고 호수가 들려주는 위대한 잠언을 듣는다. 영혼을 보듬는 행복감이 밀려와 쾌재를 쏟아내면 아린 상처까지 치유해 줄 것 같다.

바라만 봐도 위로가 되는 호방한 호수 물길 따라 산책과 순례를 하고 있다. 차면 내릴 줄 알고, 과하면 버릴 줄 아는 호수에서 인생의 스승을 만난다. 스승은 호수를 닮으라고 종용한다. 은빛 물비늘 출렁이며 엄하게 타이른다. 한 번쯤 호수 물머리를 산책해볼 일이다. 환희를 만끽하며 걸어볼 일이다.

호수의 물도 처음에는 무룡산 산속 작은 옹달샘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둥지를 떠난 물의 여정은 수많은 지류가 합쳐져 계곡을 만들었다. 물머리는 경계를 지우며 오직 낮은 곳으로 흘러내렸다. 물길은 멈추지 않는 끈기로 무두질하는 동안 힘이 부치도록 불어났을 게다. 수없이 바위를 넘고 폭포에 떨어지기를 반복한 물길. 신랑의 한복가랑이처럼 흐르다 다시 만나기 위함이라 항변도 했을 것이다. 산허리를 감아 돌며 물길을 틔우고, 생명체를 불러 모아 모유를 먹였다. 생경한 지류가 만나 서로를 격려하며 호수까지 닿았지 싶다. 바위를 깎는 풍상의 칼날을 견뎌온 물줄기는 호수를 이루었다. 마침내 비경과 문경을 잔뜩 머금은 명경지수를 담은 호수를 만들었다. 무룡산 정기가 낳은 독립운동가를 기리기 위해 박상진 호수라 이름 지었다.

몸을 낮춰 물속을 들여다본다. 물고기들이 무리지어 지느러미로 율동하며 유영하고 있다. 그곳에는 격한 생존경쟁도 없는 평온한 천국이다. 가지를 호수에 떨어뜨린 소나무가 열병 앓는 신음소리를 낸다. 줄기는 하늘로 향하고 나이테는 옆으로 뻗어 균형을 이룬 나무들이다. 나이를 옆으로 먹어 장수한 나무의 비경에 눈은 호강하고 마음은 흥으로 가득 차오른다.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본다. 지나온 길에 놓친 풍경이 생경하고 다르다. 호수 옆 연못에서 바람에 등 떠밀려 춤추는 연꽃이 나를 보자 신이 난다. 오늘이 가장 아름다운 날인 것은 눈이 푸짐하고 마음이 젊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호젓한 호숫가를 산책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여유가 넘친다. 시나브로 푸릇한 나무숲을 안고 있는 호수를 마음에 품었기 때문일 것이다.

호수는 스스로 보물을 내보이며 사유를 아낌없이 하게 한다. 득음을 들려주는 나무가 중모리와 자진모리를 부르면 흥겨운 해일을 온 몸으로 느낀다. 물고기가 물위로 풀쩍 뛰어 올라 신났다. 기억 속 유년의 동심을 소환한다. 알싸한 제피나무 향기가 청량한 기운을 빈 가슴에 담아준다. 발걸음은 가뿐해오고 몽환에 빠진 나는 날선 사유로 수필을 쓰는 한량이 된다.

태양의 역광을 받아 엽록체를 보여주는 환상적인 숲을 만난다. 기쁜 기운이 팔딱 일어선다. 걷기를 멈추고 호숫가 안쪽까지 나무로 된 휴식처에 앉아 본다. 호수에 사는 신선을 만난 기분이다. 마음은 진정되고 감정을 차분하게 만드는 샤먼이 인다. 마음속 혼탁을 씻어주는 청아한 득음이 들린다. 새소리, 바람소리, 매미울음 소리에 마음은 몰입과 환희를 반복한다. 신령함을 불러오는 시퍼런 호수가 내 마음속에 관성처럼 흥을 몰아넣는다.

호수는 산을 품고 나무를 품고 나를 품어 사랑을 나눈다. 받아들이기 위해 나를 버리고 덧없는 에로틱을 자극한다. 경계를 허물고 호수는 아릿한 통증까지 조근 조근 다독이며 열애를 한다. 어둠이 오면 끝날 호수와 그림자가 엮어내는 사랑의 에로티즘 이야기는 전설로 남으리라.

우수에 젖은 이름 모를 꽃들이 외로운 듯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심오한 대자연이 묻은 질문과 득음을 글로 옮긴다. 운명이 내 글을 잃고 감동하도록 자연이 일러준 대로 글을 옮겨 적는다. 호수와 하늘과 산을 베끼면 위대한 작품이 나오지만 깜이 못된 나는 머뭇거린다. 호수가 차린 저녁 성찬 위로 황홀한 저녁노을이 잔치를 벌이면 나는 한량이 되어 소고춤을 춘다. 바람이 물결에 칼을 만들고 호수는 근엄하고 묵직한 에너지를 안겨준다.

호수를 돌아 나왔다. 몸만의 나들이가 아닌 생각과 사유의 호수산책이었다. 살며시 지나온 호수를 조망해 본다. 치유와 자유가 호숫가에 머물러 있다. 침묵하고 있는 영험한 호수가 내 안의 불행을 거두고 행복을 건넨다. 한 번 쯤 시간을 내어 박상진 호수 물길을 따라 걸어 볼 일이다.

   
▲ 배재록

■배재록씨는
·경북 울진 출생, 현대중공업 부장 명예퇴직
·제9회 목포문학상 수필 본상 당선(2017)
·제13회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 수필 당선(2018)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당선(2018)
·달구벌 문예대전 수필당선(2019년)
·울산문인협회, 울산수필가협회 회원

 

 

 

   
▲ 이창락씨

■이창락씨는
·제19회 아시아현대미술제 초대(일본 동경도미술관)
·한국미협 울산지부장(4~5대) 역임
·울산·경남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초대작가
·황조근정훈장(2000) 울산문화상(2006)
·한국예총 예술문화상 대상 수상(2019)
·울산수채화협회·울산구상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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