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갑과 을의 입장 될 수 있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
특권의식 버리고 평등인식 가져야

▲ 이기원 전 울산시 기획관리실장

우리 사회가 변하면서 새로운 단어들이 생기는 데, 2013년경 한국에 등장해 사전에까지 등재된 신조어가 ‘갑질’이다. 본래는 계약관계에서의 갑·을 중 ‘갑’을 뜻했으나 이후 권리관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인 ‘갑’이 상대방에게 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제멋대로 구는 짓을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 되었다. ‘갑질’은 육체적·정신적 폭력과 언어 폭력 뿐만 아니라 괴롭히는 환경 조장 등 다양한 양태로 나타난다.

그러면 왜 이러한 ‘행위’를 하는 자들이 자꾸 생길까?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몇 가지로 요약되는 데 두 가지만 들면, 먼저 한국은 해방 이후 국가사회 전반에 자유민주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하는 각종 법과 제도를 받아들여 이제 제도적으로는 자유민주사회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역사가 일천하다 보니까 아직 생활적 민주주의는 정착되지 않아 평등의식이 결여되어 있고 특권의식을 가진 자들이 많다.

지난 해 말 김포공항에서 국회의원과 공항 직원이 서로 ‘갑질’이라며 논란을 벌인 끝에 국회의원의 ‘갑질’로 밝혀진 사건과 서울 강북구 의원이 17살이나 많은 동장을 폭행한 사건 그리고 2018년 10월 울산시의원의 공무원에 대한 ‘갑질’ 사건 등의 경우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다음은, 한국의 경우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국민의 소득수준은 세계 10위권으로 높아졌으나 의식수준은 상대적으로 선진화되지 않은 점이다. 즉, 사람의 가치를 부와 연결시키고 자기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이른 바 ‘졸부 근성’을 가진 사람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일부 기업 대표들의 종업원에 대한 갑질 사건 등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갑질’은 권력을 가진 자나 큰 부를 가지 자들만 행하고 일반 국민은 행하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모두가 ‘갑질’의 주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희대 송재룡 교수는 한국의 갑질 문화에 대해서 단순히 갑질을 행한 개인의 도덕성이 문제가 아니라 개개인이 한국사회의 갑과 을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 뿐이라고 지적했다. 즉, 갑질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이며 존비로 대변되는 한국사회의 문화정서적 경향이 갑질의 가장 큰 영향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한 관계에서 을이었던 개인이 또 다른 관계에서 갑이 됐을 때 같은 행동을 하는 이유가 된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보겠다. 국회의원이나 시의원의 경우 갑질의 주체만 될까? 선거 때가 되면 이들은 지역구를 돌면서 유권자들에게 표를 호소한다. 이 때 인사를 하면 욕을 하는 사람, 명함을 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찢어버리는 사람, 바로 우리 일반 국민이 유권자로서 ‘갑질’을 하고 이들은 ‘을’이 되는 것이다.

또, 얼마 전 울산의 어느 심판기구에 모 쇼핑몰의 종업원이 회사측의 해임처분에 대해 ‘있지도 않은 일에 대해 회사가 갑질을 했다’며 ‘복직’ 구제신청을 냈다. 그러나, 회사측의 증거서류와 관련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본 결과, 이 직원은 쇼핑몰에 입점한 업체들에 대해 부당한 행위로 오히려 ‘갑질’을 자행한 것으로 판명이 되었다. 한 때 인터넷을 달궜던 햄버거 가게 ‘갑질’의 당사자도 일반 시민일 것이다.

행정기관과 시민과의 관계에서는 어디가 갑이 될까? 보통의 경우에는 기관이 갑이 될 것이나 반대의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사회복지 담당 부서의 경우, 시민이 수혜 대상자 신청을 하면 공무원은 관계 규정에 따라 검토하여 대상자를 결정하는 데, 이 행정절차는 공무원의 재량이 개입될 수 없는 이른 바 ‘기속행위’다. 그런데, 신청한 대로 되지 않을 경우 공무원에게 폭언은 물론 난동까지 부리는 사례도 있다. 다른 인·허가 부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럴 때는 시민이 갑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갑이나 을의 입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역지사지’란 말과 같이 항상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배려해야 한다.

특히 특권의식을 버리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특히 지도층). 그리고 가정이나 학교에서 어릴 때부터 이러한 인식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기원 전 울산시 기획관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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