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ubc울산방송 편성제작국 PD

영국 런던 킹스크로스역은 1852년에 들어선 철도역이다. 우리에게는 영화 ‘해리포터’에서 주인공이 마법학교 호그와트로 가기위해 기차를 타던 ‘9와 3/4승강장’으로 유명하다. 멋지게 리모델링된 오래된 역사(驛舍)에 들어서면, 바쁘게 오가는 인파들 너머 한쪽 벽면에 카트가 벽을 반쯤 뚫고 들어가는 장면이 마치 영화 세트처럼 만들어져있다. 방문객들은 줄을 서서 연신 실감나는 포즈를 사진에 담으며 즐거워한다.

이곳의 진짜 볼거리는 역사(驛舍) 뒤편에 있다. 지은 지 100년이 지나면서 빈민촌으로 전락한 역 주변은 2006년 철도주변 토지 매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재생사업이 이루어졌다.

역사(驛舍) 뒤편에는 과거 런던 시민들에게 석탄과 식량을 실어 나르던 화물창고와 운하, 그리고 가스 저장고 같은 건물들이 즐비했다. 작년 필자가 방문했을 때 거대한 가스 저장고는 철골 프레임을 살린 독특한 아파트로 변모 중이었고, 운하를 따라 산책로와 공원과 광장들이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석탄 저장창고도 오피스, 레스토랑, 쇼핑시설로 리모델링 중이었다.

도시재생사업이 매력적인 것은 나이테처럼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면서 공간의 재활용을 만들어 간다는 점이다. 하지만 오래된 공간의 도시재생이 단순히 옛날을 떠올리는 공간으로만 머문다면 성공할 수 없다. 우리가 시도한 많은 도시재생 사업들이 실패한 것은 과거의 기억에만 의미를 부여하고 정작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킹스크로스역 인근에는 글로벌 기업 구글 영국본사가 들어섰다. 구글 영국본사는 킹스크로스의 대표적인 상징 중 하나이지만, 도시재생 측면에 있어 필자에게 더 영감을 주었던 것은 따로 있다. 물품 상하차장으로 쓰이던 그래너리 빌딩으로 이전해 온 영국 최고 예술대학, 런던예술대학교(University of the Art London,UAL) 센트럴 세인트 마틴 캠퍼스가 그것이다. 디자인에 특화된 작은 학과의 이전이었지만 젊은 예술인들의 자유분방한 에너지가 이곳을 생기 있게 만들어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울산 구도심에 울산시립미술관이 지어진다. 그리고 구도심은 도시재생사업으로 모든 지자체의 관심대상이다. 이곳으로 지역 대학 디자인학과나 미술학과가 이전해온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시립미술관과의 시너지 효과도 있을 뿐만 아니라, 젊은 예술인들이 구도심의 오래된 기억들을 그들의 작품에 담고 인근 소극장, 커피숍들과 어우러져 새로운 문화거리 조성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도시재생의 성공에는 하나의 성공 키워드가 있다. 광주의 1913송정역시장은 오래된 재래시장 가게들 사이에 젊고 감각적인 카페, 수제 맥주 전문점, 흑백 사진관, 문구점을 운영하는 젊은 사장님들이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고, 전주 남부시장도 청년몰이 입점함으로써 입소문을 타고 성공하였다.

이처럼 수많은 도시재생 성공에는 반드시 오래된 공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어주는 젊은 세대의 참여가 절대적이다. 지역 대학의 많은 학과들이 울산 곳곳의 도시재생 지역으로 이전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조선해양학과는 동구로, 예술대학은 중구 구도심으로 옮겨가는 것처럼 말이다. 낮에 텅 비어 버리는 공동화 현상을 막고 도시에 활기를 불러일으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닌가 한다.

울산은 대학이 많지 않으면서 대부분 도심에서 다소 떨어져있다. 이제 대학은 젊은 학생들만의 공간도 아니다. 빠르게 변모하는 세상에서 직장인들의 재교육과 평생교육의 기능도 같이 담보해야 대학도 살아남는다. 대학이 시민들 속으로 들어오고 젊은 열기가 구도심 도시재생 지역을 채워 나가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이정호 ubc울산방송 편성제작국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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