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현영 부산금정경찰서 경무과 경장

얼마 전 결혼이주 여성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남편으로부터 무차별 폭행당하는 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고작해야 세 네살기로 보이는 아이가 부모를 향해 울부짖으며 자지러지는 중에도 남편의 폭행이 이어지는 모습은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영상이 퍼지자 ‘사회적 약자인 결혼이주 여성과 힘으로 군림하는 한국인 남편’의 구도로 바라보는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범죄 발생의 프레임에서 바라보면 문제의 보다 정확한 포인트는 심각한 가정폭력입니다. 국적과 성별, 연령, 사회적 지위와 환경을 불문하고 가정폭력은 분명한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가정폭력이 더 이상 남의 가정사로 치부되지 않고 사회적 문제로 공론화 하게 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후반부터 정부와 경찰이 앞장 서 가정폭력 피해 예방에 대한 대대적인 인식 개선에 나선 때부터입니다.  각 경찰관서에 여성청소년과가 신설되어 가정폭력 문제에 엄정 대응하기 시작한 것 또한 바로 이 무렵입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어디까지가 가사(家事)인지 '가정'과 '폭력' 두 낱말의 조합에 대한 개념 자체가 모호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가정폭력은 결코 개별 가정의 문제로 국한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인 일로 치부하기에는 확인되는 피해규모가 크고*, 폭력의 피해가 직접 당사자인 가․피해자 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 전체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감안할 때 사회응집력이 떨어지는 간접적 문제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 *'가정폭력'  112신고건수는 2018년 지난해 한해 24만8천660건에 달합니다.)

가정폭력은 가족 구성원 사이의 신체적, 정신적 또는 재산상 피해가 따르는 행위를 일컫습니다. 가족구성원 간 단순한 갈등이나 불편을 모두 가정폭력이라 할 수는 없지만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거나인격권을 박탈하는 수준으로 외포감을 형성한다면 분명한 가정폭력입니다. (*상해·유기·학대·혹사·감금·협박·공갈·강요·명예훼손 및 재물손괴 등의 행위.)

한편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약칭 '가정폭력처벌법') 은 "누구든지 가정폭력범죄를 알게 된 경우에는 수사기관에 신고할 수 있다"(4조 1항)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바로 피해 신고의 주체를 '누구든지'로 둔 것입니다. 해당 조항은 가정폭력이 사회 전체가 합심해서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중 누구라도 주변의 가정폭력에 대한 문제를 느끼면 사법기관에 신고해 피해자를 보호할 '자격'을 갖추었다는 의미이며, 마찬가지로 누구든지 가정폭력 피해를 경험한 때에는 경찰 등 국가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남의 집 일이니까.", "굳이 내가 신고하지 않더라도..." 오랜 편견들이 가정폭력을 그저 '가정'의 일로 남아있게 만들었습니다. 집안일이니 그저 그 집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들이 가해자들에게는 면죄부를, 피해자들에게는 경찰에 신고할 일인지 조차 가늠하지 못하게 하는 무감각을 안겼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지금 이 시간에도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가정폭력은 개인적인 가정사가 아닌 사회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때때로 건강한 오지랖이 필요합니다.     부산금정경찰서 경무과 경장 안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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