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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강영환의 건축과 문화
[강영환의 여행과 건축, 그리고 문화(37)]전통과 정체성의 보존부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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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08  22:3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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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나카에서 강변 경사지에 촘촘하게 모여 있는 린첸강 마을. 강과 계단식 논, 고성과 같은 수도원이 그리는 풍경은 넋을 뺄만한 장관이다.

전통은 오랜시간 살아남은 삶의 양식
그들다움은 문화의 정체성에서 연유
문명이라는 잣대의 선진-미개 구분은
유럽중심주의 시각의 오만·편견일뿐


국민 총행복 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라는 개념을 만들어 국민의 행복증진을 국가정책의 최고목표로 설정한 나라.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네 가지 기준 중 하나가 ‘전통과 정체성을 실현하는 문화의 보전과 증진’이다. 이는 말로만 그치는 선언이 아니라 실천적 규제로 실행되고 있다. 전통문화 보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여행객수를 제한하고,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담배의 제조와 판매, 흡연을 금지하고, 공공장소에서의 전통 복장 착용을 의무화하며, 모든 건축물을 전통에 기반하여 짓도록 규제하는 나라. 어떤 사회주의체제 보다 더 세밀하고 엄격한 규제가 실행되는 것이다.

건축양식의 전통성은 어느 나라보다도 강하게 지켜진다. 현대도시인 수도 팀푸에서조차 그 흔한 국제주의 양식, 성냥갑 모양의 콘크리트 건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몸체는 단조로운 근대건축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전통양식의 지붕을 덮는다. 간혹 경주의 역사지구에서처럼 ‘갓 쓰고 자전거 타는’ 부조화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최소한 도시경관의 양식적 통일성을 지킨 것은 분명하다.

대도시 밖을 나서면 거의 모든 건축이 근대 이전에서 멈춘 것 같다. 사원이든 주택이든 심지어 호텔과 사무소에서도 전통건축의 양식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농촌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재료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양식적으로는 200~300년 전과 큰 차이가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건축에서 경제력에 따른 차별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처럼 서민들의 ‘초가집’과 양반들의 ‘기와집’이 분명 있을 법하지만 여기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기껏해야 규모와 장식의 차이 정도인데 전체 외관의 양식적 차별성으로 보기는 어렵다. 빈부나 계층에 따른 차별성이 적었기 때문일까?

푸나카에서 강변 경사지에 형성된 린첸강 마을을 찾아 간다. 마을은 급한 경사지에 촘촘하게 모여 있다. 지중해 마을만은 못하지만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밀집된 경관을 갖는다. 마을주변은 손바닥만한 계단식 다락논이 층층이 쌓여있는 것으로 보아 경작이 가능한 면적을 확보하기 위해 밀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작은 쵸르텐과 하얀 타르초(장대 깃발)가 마을의 입구로 들어섰음을 알려준다. 흙벽돌로 쌓은 담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허름하게 노출된 외벽과 궁색한 살림살이들로 보아 그리 부촌은 아닌 듯싶다. 회칠이 떨어진 자리에 흙벽돌의 속살이 드러난다. 지붕재료가 양철로 변한 것도 유감이다. 하지만 양식적 완결성과 상층부의 창호와 장식은 어떤 사회의 토속민가에 비해서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검이불루(儉而不陋)! 소박하지만 당당하고 나름대로 격식을 갖추었다.

집들은 등고선을 따라 배치된 탓에 불규칙하다. 하지만 구불거리는 도로는 폭도 경사도 변화하면서 끊임없이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마을 중심에 들어서자 제법 넓은 공터가 나타난다. 경사지이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모여 한담을 하고 있다. 이 마을의 광장으로서 공동체적 삶의 양식이 드러난다. 공터에서 작은 골목들이 이어진다. 도로 포장만 깔끔했다면 유명한 이탈리아의 해변 마을이라 해도 믿을 것이다.

길은 마을의 맨 꼭대기에 있는 사원에서 끝난다. 주민들에게는 하늘과 교접하는 산신당이었으리라. 건물 한 동으로 이루어진 촌 동네 사원이지만 건축만은 당당하다. 규모만 작을 뿐 죵 안에 있는 큰 사원의 건축양식과 다를 바가 없다. 사원은 린첸강 마을의 풍경을 통합시키는 랜드마크가 된다. 이탈리아 남부 포지타노 마을에서 돔 지붕의 성당처럼 마을 주택들을 거느리고 있다.

마을에서 바라다 보이는 계곡의 모습은 더욱 환상이다. 강물이 돌아가는 어귀에 제법 높은 언덕이 있고 언덕 정상에 수도원 하나가 위풍당당하게 강물을 내려다본다. 강과 계단식 논과 둘러싸는 산, 고성과 같은 수도원이 그리는 풍경은 넋을 뺄만한 장관이다. 구비마다 중세 고성을 갖는 라인강의 로맨틱 가도가 떠오른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부탄만의 독특한 풍경이다. 미개국의 낙후된 문명일 것이라는 무지와 편견이 무참히 깨져버린다. 두 눈으로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리라.

   
▲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전통은 오랜 시간을 거쳐 살아남은 삶의 양식이다. 그것은 특정한 환경 속에서 태어난 배경과 이유가 있고, 발전된 과정이 있으며, 지속할 수 있는 가치를 함유한다. 문화는 생태적인 적합성을 넘어 그 사회의 정체성과 유대감, 귀속성의 근원이 된다. ‘그들다움’은 문화의 정체성에서 비롯된다. 문명이라는 잣대로 선진과 미개를 구분하는 것은 19세기 유럽인들의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라는 오만과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전통을 지키려하는 것은 단지 과거에 대한 향수나 타문화에 대한 폐쇄성과 배타성 때문이 아니다. 환경적, 사회적, 문화적 가치를 수호하려는 의지의 발현이다. 저개발국이며 저소득국가인 부탄이 ‘전통과 정체성을 실현하는 문화의 보전과 증진’을 국가정책의 기본전략으로 선택한 것은 자기 문화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국가적인 바가지 관광요금을 내고도 부탄을 찾아갈 이유는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그들만의 것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의 도시는 과연 ‘우리의 지속적 가치와 미학’을 얼마나 담고 있을까? 유럽의 중세도시에서는 그 역사와 전통에 감탄을 연발하던 사람들이 도시에서 기와집 몇 채 살리자고 하면 시대착오적이라고 펄쩍 뛰는 모순적 정서를 어찌 설명해야 할까? 가난하지만 긍지가 있는 나라, 부탄의 실험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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