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규홍 경상대학교 인문대학장(국어국문학과)

오늘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을 보고 사면초가라고 했던가. 사면에 초나라 노래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니라 사면에서 우리를 급박하는 소리가 들린다. 한쪽에서는 러중 폭격기가 굉음을 내며 우리 영공에서 급박하고, 한쪽에서는 불꽃을 내며 미사일 쏘아 올려 협박하고, 또 한쪽에선 자기의 죄값을 모르고 우리 생존을 위협하는 철면피한(漢)의 칼춤소리가 들린다. 또 한쪽에서는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다는 미명으로 그 대가를 내라고 하는 협박 소리가 들린다. 이 어찌 사면초가라 하지 않을 수가 있나.

우리는 수천년 동안 수많은 외침을 받으면서도 오늘날 세계를 놀라게 하는 기적을 낳았다. 우리 스스로가 무덤을 파서 열강들의 먹잇감으로 나라가 찢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만큼 살게 된 것은 우리 배달 겨레가 가지고 있는 알 수 없는 묘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한결같이 대국은 작은 나라가 잘 살고 부강해지는 꼴을 그냥 지켜보지 못했다. 적당하게 살게 하고, 적당하게 키워주면서 더 이상 크게 성장할 수 없게 한다. 몸집이 크지고 힘이 세어지면 자기들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소위 제국주의의 속성이다.

세계는 혈맹이고 뭐고 모든 것이 자기들 이익 속에서 돌아가는 냉정하고도 냉정할 뿐이다. 경제적 이익, 영토적 이익, 힘(군사)의 이익, 이념적 이익을 위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다. 치열한 기싸움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이러한 열강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며 그들의 칼춤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우리 역사를 찬찬히 뒤돌아보면 태평한 때가 어디 얼마나 있었던가 할 정도로 끝임없는 외침과 내란이 있었다. 한 나라 임금이, 대통령과 그 밑에서 나라를 이끌고 가는 위정자들의 잘못으로 죄없는 수많은 백성들은 피흘리고 죽어가야만 했다. 우리 임금이 남의 나라 왕 앞에서 삼배하고 아홉번 머리를 박는 차마 입에도 담기 싫은 치욕을 당하기도 했고 부왜 역적들의 손으로 조국을 팔아 넘겨 우리말도 우리글도 못 쓰게 하고 자유와 권리를 송두리째 빼앗기고 땅과 재산을 몽땅 내어 주어 수 십 년 동안 노예같은 피박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의 전쟁노름에 영문도 모르고 우리 백성은 총알받이로 죽어가야만 했다. 또 우리는 36년 동안 일본의 그 고통스런 핍박에서 겨우 나라를 찾았지만 그것도 자주 광복이 아니라 외세 열강들의 힘으로 얻는 거라 힘도 못 쓰고 다시 허리가 잘려 나가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이로 우리는 또 한번 상상하기 힘든 대전쟁을 겪으면서 수백만 명의 부모 형제가 죽어가고 나라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우리 겨레는 이제 도저히 다시 일어날 수 없는 극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우리 겨레는 또 꿋꿋이 털고 일어나 세계가 놀라고 부러워하는 기적을 낳았다. 전쟁으로 완전 폐허가 된 나라가 반세기만에 세계 10대 강국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지금 우리는 역사적으로 여느때도 경험해 보지 못한 태평성대를 경험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런데 세계 패권국들이 이런 우리를 가만히 놓아 둘 리가 없다. 이렇게 우리가 살 만하니 세계 제국주의의 망령과 속성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두번 다시 그들의 놀이갯감이 되지 말아야 한다. 이제 두번 다시 우리 겨레가 가난과 죽음으로 돌아가는 어리석은 짓은 결코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당파 싸움으로 나라를 망하게 했던 역사가 있다. 매국 역적 몇놈이 이 나라를 송두리째 팔아 먹은 역사가 있다. 이념의 대립으로 참혹한 전쟁을 일으킨 역사가 있다. 군사 독재정권에 피흘리며 민주를 찾은 역사가 있다. 이처럼 우리는 역사를 통해 뼈저린 교훈을 얻을 만큼 얻었다.

강한 나라만이 살아남는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 우리 앞에 다가오는 사면초가의 위기를 다시 일어서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치 지도자는 지도자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힘을 한데 모아야 할 때다. 앞날이 걱정이다.

임규홍 경상대학교 인문대학장(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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