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기술굴기 막으려 美 경제보복
아베정권도 한국 기술대국화 견제
신뢰 바탕된 세계경제 평화 찾길

▲ 이은규 울산발전연구원 전략기획실장

한·일간의 경제마찰이 시민사회는 물론 외교·안보분야까지 전방위로 번져 나가고 있다. 미·중간 경제전쟁이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한·일간 대립 심화로 동북아지역 전체가 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느낌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상황을 패권전쟁으로 보고 있다. 미국 외교정책의 근간인 ‘자국우선주의’ 전략은 미국의 패권이 위협받는 시기마다 등장했다. 그동안 미국은 패권국가로서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자국에 유리하도록 세계경제질서를 바꾸어 왔다. 베트남 전쟁으로 경제력이 약화된 미국은 ‘닉슨 선언(1971년)’으로 브레튼우즈 체제를 폐기했다. 다른 나라 시장을 열기 쉽도록 변동환율체제로 교역질서를 바꾼 것이다. 1970~80년대 들어 독일, 일본 등 신흥산업국이 성장함에 따라 미국의 생산과 무역이 크게 약화됐다. 이때도 미국은 종합무역법을 제정하고 좀 더 개방적인 무역체제인 WTO체제를 출범시켰다. 최근의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정책은 개방을 통해 미국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국가들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인 것이다.

한편 트럼프가 촉발한 것으로 알고 있는 미·중 경제전쟁은 사실 중국이 먼저 도발한 측면도 있다. 중국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확대되는 것을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보던 미국의 입장에서 2008년 금융위기는 중국을 견제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미국이 금융위기로 휘청거리고 있을 때 중국은 달러를 대체할 기축통화에 대한 공론화, 위안화 국제화 등의 이슈로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무차별 M&A를 통해 기업과 기술을 사들이고 국가주도의 기술굴기를 추진했다. 외교적으로도 미국의 턱 밑에 있는 남미의 반미 정권에 비용을 대고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며 군사적으로도 대립했다. 미국은 중국의 이러한 행동을 패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중국이 미국을 넘어설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자 몰락한 대영제국의 신화가 떠오르기도 했을 것이다.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을 바탕으로 경제를 추스른 미국은 서서히 보복에 착수했다. 금리인상과 긴축을 통해 인플레이션에 대비하는 한편 중국, 일본 등 주요 교역상대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상대국의 통화가치를 강화하도록 하여 상대적으로 달러가치를 하락시켜 수출경쟁력을 유지하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이는 달러가 글로벌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미국의 압박을 받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달러의 횡포이며 미국 자국우선주의의 부당한 처사일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입장에서는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는 자연스러운 수순이며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전략일 뿐이었다.

오바마에 이어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중국에 대한 보복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과도한 미·중 무역불균형에 대한 불만이 표면적인 이유이나 중국의 기술대국화에 대한 노골적인 견제가 분명하다. 중국이 쉽게 첨단 미래기술시장을 선점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제조업 약화와 일자리 감소를 야기하고 나아가 미국을 제치고 패권국가로 성장하는 것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확전양상을 보이고 있는 한·일간의 경제전쟁도 미·중 경제전쟁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문제에서 촉발된 한·일간의 마찰도 들여다보면 아베정권이 한국의 기술대국화를 견제하려는 속내가 역역하다. 한때 일본의 NEC, 히타치, 도시바가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반도체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70%를 넘는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일본 입장에서는 한국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미래먹거리인 IT산업의 패권을 가져가는데 불안을 느꼈을 수 있다. 또한 북한을 둘러싼 군사·외교무대에서의 소외는 아베정권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가는 개헌에 더욱 집착하게 할 수도 있다.

현재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국가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력과 분업이 그동안 세계경제를 이끌어 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마초’들이 지배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동북아시아와 미국을 포함한 환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공존의 시대가 다시 돌아오길 기원한다. 이은규 울산발전연구원 전략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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