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산비탈 묵정밭 하얀 개망초. 올여름 묵정밭도 개망초가 차지했다. 개망초는 꼭 이 땅의 ‘개똥이’같은 풀이다. 개똥이 같은 강한 생명력으로 아무데서나 하얀 꽃을 앙증스레 피워낸다. 가을들판에 들국화라면 여름들판엔 개망초다. 들국화가 성숙한 여인 같은 꽃이라면 개망초는 유년기 학동 같은 꽃이다. 꼭 어린 학동들처럼 재잘거리며 무더기로 피어나 잡풀 우거진 묵정밭을 하얗게 차지한다. 온통 하얀 개망초 묵정밭, 들판을 밝히는 하얀 질서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개망초 묵정밭에 풀벌레가 운다. 풀벌레가 울면 개망초 흰 꽃들은 더욱 처연하게 빛을 발한다. 벌써 가을이 그리운 것이다.

‘계획된 구식화’란 일정기간이 지나 구식이 된 제품은 저절로 시장에서 사라지고 새로운 모델이 등장한다는 경제학적 계념이다. 모두 계획된 프로그램에 따른 것이다. 세포의 생성과 소멸도 마찬가지다. 노쇠한 세포는 스스로 소멸하고(apoptosis), 소멸한 자리엔 새로운 세포가 생겨난다. 노쇠한 세포가 제때 소멸하지 않으면 노쇠한 세포는 염증물질을 직접 분비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보내 염증을 유도한다. 노쇠한 세포가 많아질수록 염증성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는 것이다.

다행히 면역계는 노쇠한 세포를 외부 침입자로 인식하여 스스로 제거한다(네이처 2011). 그리고 그 자리엔 세포분열을 통해 새 것의 세포가 생겨난다. 이것이 생명유지의 최대 비결이다.

정상적인 인간세포는 정해진 횟수만큼 분열하고 나면 분열을 멈춘다(레너드 헤이플릭, 1961). 이 같은 세포 분열의 한계를 ‘헤이플릭 한계’(Hayflick limit)라고 한다. 인간의 ‘헤이플릭 한계’는 52~60회이다. 인간의 세포가 한번 분열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2.5년이니 이론적으로 가능한 인간의 수명은 150년이다(60×2.5년=150). 인간에게 한정된 ‘계획된 구식화’다.

여름이 한창이다. ‘계획된 구식화’는 모든 생명체에 어김없이 적용되어 하얀 개망초도 여름과 함께 소멸해 갈 것이다. 소멸해간 빈자리엔 가을이 찾아 올 것이고 곧 새로운 모델들이 가을 들판에 등장할 것이다.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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