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역에서 경주방면 국도 7호선을 타고 가다가 울산공항을 조금 더 지나면 오른쪽으로 "고헌 박상진의사 생가" 안내 표지판이 눈에 띈다. 90도로 꺾어 안내판을 따라가다 철길을 넘으면 바로 작은 구멍가게가 보인다. 철길과 나란히 난 작은 시멘트 포장길 왼편으로 집 사이 사이에 논밭이 펼쳐진 동네가 나온다. 이곳이 밀양박씨 밀직부원군 중미(중시조)의 고손자인 청풍당 영손의 후손들이 34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울산시 북구 송정동 지당마을, 큰마을, 작은마을, 골마을이다. 해방 이후 직장과 신학문 열풍으로 하나 둘 동네를 뜨기 전까지만 해도 마을 전체가 박씨들로 이뤄져 있었다. 그 영향으로 아직까지도 이곳 박씨들을 흔히 "송정박씨"라고 부른다. 소지명을 딴 것이다.

 박씨가 울산 송정에 온 것은 현종5년인 1664년. 괴천공 박창우와 이휴정 이동영(학성이씨)은 조선 후기의 문신 허미수(1595~1682)의 제자로 인연을 맺어 호형호재하며 지낸 사이로, 창우는 이휴정의 초청으로 울산의 예문을 가르치는 예사로 초빙돼 왔다.

 박주동(63) 송정문중 괴하장학회 총무는 "전해오는 얘기로 원래 송정에는 학성이씨가 살았는데 박씨가 세를 확장하면서 이씨가 떠났다. 당시에는 고을현감이 새로 부임해 오면 예사의 후손인 송정문중 사랑채를 찾아가 인사를 할 정도로 문중에서 벼슬을 한 조상이 많았다"고 전했다.

 학자의 후손이라서인지 송정동 출신의 박씨 가운데는 유난히 학자가 많다. 박종해 시인(대구 동부여고 교장)이 송정동 출신으로 박 시인의 아버지 고 박용진은 안동 도산서원 원장을 지냈다. 교수로는 박경동(부경대), 박대환(대구가톨릭대), 박철환(울산대), 박진형(부산외대), 박준협(동명정보대), 박동호씨가 있다. 박호동씨가 대구에서 고교 교사로 있고 고 박정수 부산지법 판사, 박기완 신학박사, 박천동 시의원도 이곳 출신이다. 고 박동훈 울산MBC 보도국장, 고 박영환 부산대 교수, 고 박정수 부산지법 판사도 송정에서 자랐다.

 박해수(81) 문중회장은 "옛부터 학자들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마을에 서당, 봉산정, 괴천정 등 학문을 연마하고 선비들이 시를 읊으며 학문에 정진하던 장소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당은 300여년 전부터 농소초등학교 설립 이전까지 일대 학생의 교육을 맡아왔다. 지금은 관리는 커녕 사람이 아무도 살지않아 폐허로 변했다.

 밀양박씨 송정문중에서는 현재 남구 신정2동에 지하2층 지상12층짜리 괴하빌딩(92년 준공)을 운영하면서 장학회를 운영, 해마다 60명의 문중 후손들에게 장학혜택을 주고 있다. 이 빌딩은 울산 입향조 창우의 9대손인 송호공 박증동(초대 장학회장)이 40억을 문중에 기증한 것으로 지은 것이다.

 박봉수(63) 송정문중 장학회장은 "조상들이 1828년 송애정사라는 배움터를 짓고, 장학회와 비슷한 서당계를 조직해 인재양성에 힘쓴 것에 이어 박증동 어른이 자산을 내놓게 됐습니다. 옛날 서당계가 현재 장학회의 뿌리가 됐습니다"며 송정문중에서 학자가 많이 탄생한 배경을 설명했다.

 송정동 큰마을에는 대한광복회 총사령관을 지낸 고헌 박상진(1884~1915) 의사 생가가 있다. 1997년 울산시 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된 고헌 생가는 전체 4개 동에 "ㅂ"자 모양의 목조 기와집 건물로 조선후기 상류계층의 가옥양식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얼마전 태풍 "매미"의 영향으로 곳곳의 기왓장이 날아가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박상진 생가를 관리하고 있는 박대환(60)씨는 "태풍이 아니더라도 보수가 필요해 안채 보수를 마친 상탭니다. 빠른 시일내에 기왓장 등을 수리를 하지 않으면 비가 새 생가 전체가 엉망이 되고, 2~3년 후면 지금 수리비의 갑절이 들텐데 시와 북구청이 서로 관리를 미루고 있어 안타깝습니다"고 말했다.

 송정동에 살고 있는 연수(75) 병수(76) 재수(69) 준환(75) 병환(68) 건동(65)씨 등은 "판사자리까지 마다하고 독립운동을 한 박상진 의사가 총사령관을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부사령관을 지낸 김좌진 장군보다 이름이 덜 알려진 것이 너무 안타깝다"며 "독립군의 후손들이 알게 모르게 정부의 박해를 받아 중앙계 진출이 어려웠다. 아무래도 집성촌을 이루고 살던 박씨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시골마을이 산 속에 움푹 패인 곳에 옹기종기 자리잡고 있는 반면 송정마을은 뒷편에 나즈막한 산을 두고 있긴 하지만 동네 앞에는 산이 없다. 마을에서 보면 철길을 막아놓은 철조망과 울산~경주방면 국도를 넘어 공항 뒷편까지 쭉 논들이 펼쳐져 있고 끝에 산이 보인다. 앞산의 개념이 없다. 그래서 이래저래 떠나고 30여가구만 남은 박씨의 후손들은 해질녘 멀리 앞산으로 넘어가는 긴 해를 바라보며 하루를 마감한다. 박은정기자 musou@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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