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정권 패권주의 시대 미화시켜
한국 나아가 세계 자유·평화 위협
日시민과 적극 연대로 바로잡아야

▲ 허영란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1906년 4월, 울산 장생포의 일본 포경기지를 시찰한 에미 스이인이라는 소설가 겸 저널리스트는 “미개국 가운데서도 조선을 연구할 정도로 심오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라고 자기를 설명했다. 일본인으로서 자부심이 넘치는 그는 한국과 한국인을 ‘미개국’ ‘미개인’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한국 방문을 앞두고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위업을 추모”하는가 하면, 울산읍내를 방문하면서 멀리 울산왜성을 보고는 가토 기요마사의 농성전을 회고하며 감회에 젖기도 했다. 당시의 경험을 정리한 <실지탐험포경선>(1907)에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직후 기고만장한 일본이 대한제국을 비하하고 조소하던 시선이 적나라하게 담겨있다.

에미 스이인을 비판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당시에도 일본에서 공부하던 한 유학생이 그의 글을 읽고 비분강개해서 <대한유학생회학보>에다가 ‘울산행’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스이인이 한국을 업신여기고 웃음거리로 삼는 글을 발표한 것은 우리가 ‘약소민족’이기 때문이라며 분개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경계하지 못하고 결점을 보인 한국인들의 잘못도 또한 지적했다. 그러나 에미 스이인의 책이 출판된 지 3년 만에 대한제국은 일본에 강제 병합되고 말았다.

지난 일은 모두 일어날 만해서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역사서술은 대부분 벌어진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기술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그렇지만 당시 한국인들인 다가올 고난을 상상이나 했을까. ‘설마’라는 막연한 낙관만으로 무섭게 흐르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기는 어렵다. 최근 한일 간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장차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신중하고 진지한 대응이 필요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경험과 역사로부터 배우는 수밖에 없다.

아베정권과 그 지지 세력이 만들고자 하는 일본은 에미 스이인이 자랑해 마지않던 패권주의 국가에 가까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당시의 시각으로 주변국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다시’ 전쟁을 벌일 수 있는 일본으로 가기 위해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기도 역시 집요하다. 뉴라이트의 역사수정주의나 독도분쟁지화 역시 같은 맥락에서 착착 진행되어 왔다. 위험하면서도 시대착오적인 행보이다.

20세기 전반의 패권주의 일본은 고립되어 있는 일본 열도의 취약성 때문에 방어선을 가능한 본토에서 먼 곳에 두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그것이 주변으로의 팽창과 침략으로 나타났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을 통해 일본은 아시아에 엄청난 피해를 주었지만, 정작 일본 본토에서 전투가 벌어진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편리하게도 자신들이 행한 가해의 기억을 쉽게 봉인했다. 오히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를 빌미로 피해자 행세를 하며 반핵 평화를 말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베정권이 내세우는 반핵과 평화는 아시아에 대한 가해의 역사를 망각하고 왜곡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다.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를 정부 차원에서 참배하면서 아시아의 평화를 입에 올리는 식이다. 망각과 기만을 위해 역사적 퇴행을 합리화하고 있다.

1940년대 초 아시아 전역을 침공한 일본은 ‘대동아공영’을 명분으로 내걸었다.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배에 시달리는 아시아를 해방시켜 함께 번영하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동남아시아 각국의 독립운동가들은 일본의 ‘아시아 해방’ 논리에 잠시나마 공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침공해온 일본군은 전쟁수행을 위해 더욱 가혹한 인적 물적 수탈을 자행했을 뿐이었다. 비록 기만적이었지만, 지난 세기 일본은 ‘아시아 해방’이라는 가치라도 내세웠다. 그렇다면 오늘 일본이 내걸고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

현대사회에서는 개별 국민국가 단위로는 해결할 수 없는 다양한 사건들이 쉼 없이 벌어진다. 그런 와중에 지난 시대를 미화하며 국수주의를 쫓는 아베정권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안녕을 위태롭게 한다. 시대를 내다보는 윤리적 도덕적 가치도 없이, 내세울 그럴듯한 명분조차 없이, 패권을 쫓는 일본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무엇보다도 일본인들의 자유롭고 평화로운 미래에 가장 위협적이다. 아베정권이 위기로 몰고 있는 일본의 미래를 바로잡는 일은 일차적으로 일본 시민의 몫이고 일본 민주주의의 과제이다. 동시에 그것은 일본을 넘어서는 위험이기 때문에, 평화와 공존의 세계를 위해 우리는 일본의 깨어있는 시민들과 적극 연대해야 하는 것이다.

허영란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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