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갈등을 친일-반일로 풀어가는 것은
지나친 감정대응으로 해결에 도움 안돼
이성적 극일의 태도로 강한국가 조성을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며칠전 74주년 광복절이 지나갔다. 외세에 힘입은 해방이지만 전제적 왕조국가에서 민주공화국으로의 이행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일제 압제를 벗어난지 고희를 넘겼음에도 일본은 대한민국의 성립과 발전에 있어, 식민지배의 뼈아픈 역사적 사실과 함께 숱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숙명적 존재다. 삼일절 등 우리 4대 국경일 중 2개가 일본과 관계된 것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불볕더위처럼 아베 정부의 수출 규제와 이에 대항한 일제 물품 불매운동 등이 달아오르고 있다.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에 대하여 일본은 한국 정부가 배상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일본 기업에 대한 강제집행으로 나아가게 되자 안보상 이유를 들어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와 함께 화이트리스트(수출우대국가) 배제 조치를 하였다. 명백한 경제 보복이다. 대통령은 대일본 경고 메시지와 함께 ‘평화경제로 일본을 이기겠다’고 했고, 일본을 우리의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했다. 경제, 외교, 안보가 뒤얽힌 형국이다.

대법원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징용공에 대한 배상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아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개인에 대한 배상도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었으므로 우리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소수 의견도 있었다.

외교문제에 관한 ‘사법자제의 원칙’이 있지만,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이상 행정부가 왈가왈부할 수 없는 것이 삼권분립의 원칙이다. 그러나 일본의 우리 정부에 대한 판결 후속조치 요구가 타당한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처음부터 외교적 교섭을 계속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지혜를 발휘할 수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외교적 파탄으로 이어져 반일, 반한으로 치달아 한미일간의 안보 협력체제에 균열이 생기도록 하는 것은 치명적이다.

한일간의 갈등을 친일과 반일의 문제로 풀어나가는 분위기는 지나치게 감정적이다. 과거 일제시대 친일의 잔재는 청산되어야 하지만, 현재 사태의 원인과 대책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비판과 해법에 관한 의견을 친일로 몰아가는 것은 곤란하다. 필자는 2005년 12월경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 당시 국회 전문위원으로서 ‘소급입법이 아니라 일제 잔재를 청산하여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올바른 법률’이라는 긍정적 검토보고를 하고, 법조문을 다듬었던 기억이 있다. 일제 식민통치에 협력한 반민족행위자의 치부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켜 독립유공자와 유족 등을 위한 사업에 사용하도록 한 입법이었다. 이 법률에 따라 재산조사위원회 활동으로 시가 2100억여원의 재산이 국고귀속되었다. 진정한 친일 청산이다. 전제 왕조국가를 일제에 넘기고 이왕 등 일제 왕공족 작위를 받았던 자들의 후손이 가진 재산도 국가 귀속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의문이 있기는 하지만.

일본의 경제 보복에 맞서 정부와 기업, 국민이 일치단합하여 이겨나가는 것은 옳다. 그러나 현재 일본과의 갈등국면에서 이성적 해법이 아니라 지나친 감정적 대응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국제관계의 현실을 직시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당장 전쟁이라도 불사할 것처럼 감정의 날을 세우는 것은 상책이 아니다. 전쟁중에도 외교 채널이 유지된다고 하는데, 국회든 외교부든 특사든 기업이든 협상과 설득으로 길을 찾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일본과의 경쟁에서 꼭 이겨야 한다는 정서가 있다. 축구대항전 같은 스포츠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올바른 길은 감정적 반일이 아니라 이성적 극일이다. 국채보상이나 금모으기 차원을 넘어 일본이 우리를 무시하지 못할 만큼의 역량과 힘을 갖춘 강한 국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미국의 도움이라도 받아 한일 갈등을 조속히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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