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정희국 소방장의 사망소식은 우리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는 태풍 차바 때 구조작업을 하다가 후배인 강기봉 소방사를 잃은 아픔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3년만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그가 남긴 유품을 보면 지난 3년 가량을 강 소방사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떨치지 못하고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보낸 것으로 짐작된다. 소방관이 된 이후 매일같이 목숨을 걸고 우리를 지켜온 그이지만 우리는 그가 스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도 죽을만큼 힘들어하고 있을 지난 3년동안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해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소방관 4만5700여명 가운데 4.9%인 2230명이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4.4%인 2000여명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고 있다고 한다. 참혹한 사건사고 현장을 하루가 멀다하고 접하게 되는 것은 물론 동료의 비극적 최후를 직접 목격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정신과적 고통을 겪는 비율이 높을 것이란 짐작은 어렵지 않다.

직업군으로 보면 경찰관도 비슷하다. 2015년 치안정책연구소가 발간한 ‘경찰관 PTSD 실태와 제도적 대처방안’에 따르면 경찰 10명 중 2명이 PTSD 위험군에 속한다. 다행히 전국적으로 경찰관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예방과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마음동행센터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울산에도 지난 8일 임상심리전문가가 배치된 마음동행센터가 개소했다. 울산지방경찰청과 울산대학교병원이 협약을 맺고 PTSD 예방과 트라우마 치료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 전국에서 11번째다.

소방관들을 위한 트라우마 극복 시설도 필요하다. 경찰청의 마음동행센터를 개방해서 소방관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긴 하지만 이용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신과적 질환의 특성상 자발적으로 찾아가는 것이 어려운 데다 특정 직업군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 있는 시설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또 치료가 아닌 예방프로그램도 지속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형식적이 아닌 실효성 있는 시설이 되려면 소방관들에게 특정된 트라우마센터의 설립이 가장 효과적이다. 하지만 소방관을 위한 트라우마센터 설치가 어렵다면 국가트라우마센터의 권역별 센터를 유치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8년 4월 광진구에 있는 국립정신건강센터에 국가트라우마센터를 설치했다. 2020년까지 권역별 센터를 설치해 전국적 재난심리지원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정희국 소방장의 비극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울산시가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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